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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구가 Aug 01. 2023

상실의 시간

무언가를 잃는 경험

    명절 때마다 얼굴 찾아뵈러 갔던 곳이 사라졌다. 인생의 굴곡을 얼굴에 담아두셨던 나의 마지막 할머니를 잃었다. 일을 시작하고 몇 해가 지난 명절에 양손 가득 맞춤 과일 박스를 정성껏 들고 갔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그곳이 이제는 없어졌다. 나의 엄마의 엄마. 나에게 남은 마지막 조모를 상실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슬픔이란 감정을 경험하는 일.

  나에겐 그랬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 손을 떠난다는 것, 내가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픔 감정을 결국 겪게 된다는 일이었다. 살면서 중요한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나는 어쩌면 그 감정을 미리 알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밤늦게까지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도 단 한 번도 가방이나 지갑 그리고 작은 립밤까지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물건과는 다르게 내가 그 감정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도 예상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 해가 생각난다. 한 해동안 함께 일했던 옆자리 동료들이 바뀌는 걸 처음 겪어보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손 편지를 전달하며 슬픔을 느꼈는지. 매해마다 느껴야 한다는 걸 적응하기까진 몇 년이 걸릴 만큼 사람을 잃는다는 것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챙기고 마음을 내어주는 것에 조금 더 신중해지고, 감정을 전달하기까지 조금 더 오래 지켜보게 되었다. 90년이 넘는 일생을 사시면서 나의 할머니는 어떤 획득과 어떤 상실을 경험하셨을까. 그 시대에는 내가 모르는, 할머니만이 아는 경험들로 꽉 찬 인생을 거두고 가셨을까. 


누군가는 '상실은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있을 때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자신을 더 성장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결국은 잘 보내주는 자세를 기르며 그 경험치를 쌓아가는 것이니. 슬픔이란 감정을 겪음과 동시에 가졌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잘 내려놓는 것이 앞으로의 내 시간에 도움이 될 테니. 


나란 삶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경험을 쌓아주는 모든 이들과 나의 손 때가 묻은 모든 것들을 되짚어보고 눈과 손, 마음으로 익혀본다. 늘 같이 웃고 떠들며 다양한 주제로 여러 생각들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과의 시간을 다시금 짚어본다. 내가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던 모든 것들에 소중함을 안다. 잘 떠나보내기 전까지 재차 확인해라.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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