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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구가 Jun 04. 2023

 우린 그렇게 호수를 돌았지

처음 만난 사람과의 8시간

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란 모래알 속에 바늘 찾기와 같다. 내가 바라는 이상형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는 살고 있겠지만 딱 그런 사람을 원하기보다는 막연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웃음이라던가, 가까이 다가올 때 풍기는 향기라던가 이런 거에 더 큰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음 토요일에 약속 있으세요?

내가 냈던 용기 중 이번에 낸 용기가 가장 컸는데, 그게 바로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대화의 물꼬는 내가 먼저 텄지만 만남의 약속을 잡자는 말은 그쪽이 낸 용기였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오고 가는 대학 근처에서 처음 얼굴을 보았고 어색함을 풀고자 카페로 들어가 대화를 나눴다. 하는 일이 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바라는지 등 궁금한 게 정말 많았지만 그건 조금 미뤄두기로 마음먹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상상한 것보다 그 사람은 더 착했던 것 같았고, 예상대로 눈을 잘 못 마주친 채 얘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상영 1순위 영화인 '범죄도시 3'을 같이 보며 깔깔 댔고, 영화 얘기를 하며 치맥을 함께 했다. 조금 더 진솔한 얘기를 나눠보고자 우린 장소를 옮겼고, 맛있는 시샤모 구이를 먹으며 어색한 공기 흐름을 계속 가져갔다. 서로의 연애 가치관과 겪었던 경험치를 알 수 있는 얘기가 오고 갔고 바라던 연애에 대한 신중함이 서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날이 조금 선선해진 후, 우린 밖으로 나와 대학 내 호수를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버스킹 공연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 취향도 나누고 그 시간을 잠깐 중지시킨 듯 노래에 취해보기도 했다. 밝은 낮에 만나 캄캄해진 밤하늘 아래 호수길을 걷고 있으니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꽤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 좀 돌릴 겸 의자에 앉아 더 깊고 진솔한 얘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연애로서 끝이 아닌 결혼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우리의 나이 얘기를 시작으로 연애에 있어 겁나는 부분과 궁금한 점들을 나눠보았다. 당차고도 솔직한 나는 내가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투명하게 잘 전달했고, 그도 그걸 잘 느낀 듯 마주치지 못했던 두 눈을 잘 바라봐주었다. 그날의 우리는 생각보다 솔직했고, 생각보다 덜 어색했고 무엇보다 설레었다.


길고도 짧았던 만남을 뒤로한 채,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타 그와 대화를 나눠보며 그가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누굴 만나 사랑을 나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옛 연인과의 사랑에서 나는 뭘 경험했고, 이제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면 다짐했던 내 못된 행동을 다신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출발선에서 설 준비가 되었는지를. 내가 바라는 내 삶에서 내가 더 성숙해진 모습을 갖고 싶다면 지금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당당하게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 시작한다는 건 생각보다 신중한 일이지만, 그건 후에 생각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에는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기 전 이 사람이 상처를 줄 것 같거나, 연애가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시작을 안 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나는 생각보다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열정이 생길 때만큼은 단순해진다. 설렘을 느끼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것 또한 열정이 있기에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천천히 물들어 오래 사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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