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낼 필요는 없다.
최근 직장생활에서 마음 상할 일이 있었다. 올해 새로 옮긴 부서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나름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일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올해 부서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키며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내는 것이다. 이 일을 함께 협업해서 진행해야 하는 사람과 이 일 말고도 또 다른 업무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말이 오고 가는 와중에 일이 생겼다. 그 사람은 또 다른 업무에서 각자 맡아야 하는 부분이 명백히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다 떠넘기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 일을 얘기할 때 우리 둘밖에 없었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는 상태인 채 자리로 돌아왔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해야 할 일이 담긴 문서를 다시 읽어보았고, 내가 말해야 하는 내용과 비정상적인 부분을 되짚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 부서에 가 그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얘기를 했다. 나와 둘이서만 나눴던 얘기를 다시 되짚어보며 내가 해야 할 부분과 맡을 필요가 없는 부분을 명확히 전달하였다. 얼굴이 붉어진 그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 자리에서 본인이 한 말을 무마하였다.
사실 시간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지만은 이렇게 가다간 모든 일을 떠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컸기에 분명하게 내가 전달하고자 한 내용을 뱉어냈던 것 같다. 올해 9년 차가 된 나에게 해마다 새로운 시련이 닥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의지할만한 주변 지인들이 항상 있었기에 늘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되돌아보면 그렇게 큰일도, 특별한 일도, 마음 상할 일도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상황을 곱씹어보고 한 용기 낸 선택이기에 후련함이 있을 뿐이다.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을 그저 옳은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한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화를 잘 내지도 않지만 화를 내면 얼굴과 행동, 말투로 티를 내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의 감정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여태껏 나의 태도를 인정하기까지 어려웠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화를 드러낼까?
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달라질 게 없거든요.
한 예능프로그램에 신동엽이 나와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화를 내지 않아요. 그러면 그 뒤에 제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지고, 화를 내어 그 일이 변화되거나 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 뒤로 화를 내지 않아요.” 언제나 감정이 앞서 다 드러내놓고 결국 스스로 발언할 기회를 놓쳐 얼버무리고 마는 나에게 한 예능인의 말은 계속해서 곱씹어보게 되는 말이었다. 화를 뱉어내는 내 감정은 당연히 좋지 않아 지고, 그 상황이 불편해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결할 방안으로 내가 찾은 건 감정 섞지 않고 분명히 내 의사를 전달하는 것밖엔 없다. 지금도 이렇게 고민하며 이번주 회식 자리를 상상해보고 있다. 사회생활은 결국 일의 강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맞는 말이었다. 나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공과 사를 구분해 가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는 거에 급급해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 또한 배울 점과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많기에 이 자세를 절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을 인정하되 산 위에 바위처럼 외로운 듯 단단하고 여유 있게 삶을 내려다보며 이 사회 속 내 신념을 쌓아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