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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구가 Jun 24. 2024

나를 알아보는 관계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을 알아가고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온다는 말이 있듯 그 과정과 시간은 소중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해가 갈수록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버겁거나 귀찮을 때가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요새는 인간관계에서 권태기가 온 건지 크게 궁금하지 않은 것은 먼저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은 멀리해라,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에게 집중해라.

5월 초쯤 친한 동료의 소개로 한 사람과 인연이 잠깐 닿았었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시간을 맞춰 얼굴 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던 시간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소중했었다. 단조로운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배울 점이 많아 보였던 그 사람은 생각보다 성실했고, 그래서 그런지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 일에 있어서 열정을 보이고 성실한 건 너무 좋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사람에게 일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시간이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시간만 소중해보였던 그 사람에게 나의 서운함을 어렵게 말했고, 결국 장거리라는 핑계로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다. 이 작은 나라에서 장거리는 없다고 생각한 난 이 끝은 마음의 거리라 생각되었고, 그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던 당찬 나의 포부는 한순간에 초라해졌다. 그리고 하나는 배웠다. 너무 빠른 관계의 속도는 그만큼 빠르게 식는다는 걸.


최근 들어 사람을 알아보는 과정 중 나는 대체 무얼 중요하게 보며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 중 여러 사건을 들어보며 이 사람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면 나는 어떤 결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은 나조차도 내 삶의 방식을 모르는데, 타인의 삶의 방식을 듣고선 뭘 중요시 여기고 있는지 판단이 서겠냐는 말이다.


한 예능에서 신동엽이 던진 말이 또 생각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친구랑 경복궁 근처에서 술 한잔을 하며 이런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50-60년을 넘게 산 부부도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도 명쾌한 답이 안 나오는데, 우린 대체 언제쯤이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결이 맞는 사람, 삶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 등 이런 말들이 나에겐 너무 애매모호하게 들릴뿐이다. 내 결이 뭐고, 내 삶의 가치관, 나의 취향이 뭔지 잘 알아야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명쾌하게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이 분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를 깨닫는 순간들을 기억해서 알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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