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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r 11. 2024

나만의 직장 내 '갭 이어(Gap Year)' 프로젝트


결혼은 반쪽과 반쪽이 만나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도 평생을 함께 할 반쪽이 생긴 까닭일까.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무엇을 원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진짜 누구일까?' 엄마의 죽음으로 생겨난 의문들. 여기에 추가된 질문 하나, '온전한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처음에 아내는 결혼 후에 소명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업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내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다행이라 생각한 아내. 게다가 대기업 직장인은 큰 고민이 없을 줄 알았나 보다. 날마다 진로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불안해질 만도 했다. 나는 오히려 아이를 낳기 전에 이 고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명'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더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를 검색하다 '갭 이어(Gap Year)'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갭 이어란 영국에서 시작된 문화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입학 전에 1년간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활동을 뜻한다. 유럽의 학생들은 사회 경험을 위해 일을 해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가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갭 이어를 보낸다.



왜 나는 잠시 멈추는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을까? 현역으로 대학 진학. 휴학도 없이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 전역과 동시에 취업으로 이어진 시간을 경주마처럼 쉼 없이 달려오기만 했다. 경주마도 원래는 야생마였을 텐데. 내 안에 자유롭게 달리고 싶은 야생마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30대 직장인인데다 유부남이 되어버린 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로 나만의 '직장 내 갭 이어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직장 내에서 멘토를 찾고 멘토링을 통해 방향성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잘 뽑기로 유명한(동시에 잘 뽑아놓은 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해 악명이 높은) 직장이었기에 마음을 터놓을 동료들이 있었다.  


나만의 멘토 후보 리스트를 만들어 순서대로 1:1 점심 식사 미팅을 요청했다. 그런데 식사를 거듭할수록 나는 점점 힘이 빠져버렸다. 좋은 사람들은 둥글둥글해서 나처럼 삐쭉삐쭉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입사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고시를 준비하다 뒤늦게 입사하여 동기가 된 대여섯 살 많은 형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냈어? 나는 뭔지 모를 공허감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나의 소명이 뭔지 찾고 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다들 누군가와 텔레파시가 통했던 경험이 있을 거다. 일명 '찌찌뽕'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어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은 전화를 받고 나는 입사 동기를 넘어 인생 동지를 얻게 되었다. 그때부터 동기 형과 나는 자주 만나면서 함께 고민했고 서로의 소명 찾기를  응원했다. (벌써 9년 전 이야기다. 현재 동기 형은 국제 공인 퍼실리테이터로 활약 중이고,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며 서로의 삶에 맺혀지는 작은 열매들을 나누며 함께 기뻐한다.)


동기 형에게 기운을 받은 덕분일까. 직장 내 갭 이어 프로젝트의 꺼져가던 불씨도 되살아났다. 멘토를 찾는 점심 식사를 시작한 지 한두 달 지났을 때였다.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다가 목회자가 되어 우리 회사의 사목(회사 목사)이 된 분을 만났다. 사목님에게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 나의 처절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한참을 잠잠히 듣던 사목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제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소명을 좇아 목회자가 되었는데요. 형제에게도 무언가 부르심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했던 세 가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수능 듣기 평가 때도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었나? 나의 눈과 귀는 사목님의 입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사목님은 먼저 현재 있는 자리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해보라고 말했다. 즉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행동을 지금 속한 팀에서 한번 시도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명에 따라 일하다 보면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지는 때가 오는데 그때는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해보라고 했다. 그 후에 더욱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지면 그땐 이직을 고려해 보면 좋다고 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혜에 감탄했다. 사목님은 소명을 이해하기 위해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을 꼭 읽어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제야 내가 찾던 직장 내 멘토를 만났구나! 직장 내 갭 이어 프로젝트의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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