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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r 18. 2024

신이 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어릴 때부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일 중에 하나가 독서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공이라도 한 번 더 차면서 땀 흘리는 게 좋았다. 그런 내 손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이 들려있었다. 더 이상한 일은 책만 펴면 하품부터 나왔던 내가 어느새 책 속에 빨려 들어가 저자와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밑줄치고 끄적이고 별표 치며 책 귀퉁이를 접었다. 생생한 감동을 전하고자 그 당시 썼던 서평을 옮겨본다.


 




소명은 현재의 거룩한 선택이다

- 제럴드 L.싯처의 <하나님의 뜻>을 읽고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 27:1) 이 말씀은 2년 전 엄마의 갑작스러운 소천을 경험한 후, 가슴 사무치도록 심장에 새겨졌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전도에 열심이었던 엄마는 오래오래 살 줄 알았다. 엄마가 예쁜 손주들을 품에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중략)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과 허무감에 사로잡히자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밀려왔다. 7년간 매일같이 13~14시간씩 일해오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 앉아 하루에 식사 한 끼도 제대로 할 수 없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는 인생인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하나님,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은 정녕 무엇인가요? 그리고 저의 소명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자는 20여 년 전에 교통사고로 어머니, 아내, 딸 세 명을 한 번에 잃는다. 가해자인 음주 운전자와 이를 방관하는 듯한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는 저자.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을 한참 보낸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나와는 비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앞서 겪은 신앙의 선배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생 전체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 안에서 과거는 '용서의 과정을 통한 회복'이요, 현재는 '거룩한 선택인 소명'이며 미래는 '영원에 대한 신실한 소망'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는 명확하게 '계시된 뜻'과 우리가 알 수 없는 '숨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자 그 숨은 뜻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 순간의 삶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살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우리의 상상 속에 살고 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이다."(221쪽) 따라서 우리는 현재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재에, 명확하게 계시된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엄마를 잃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시계를 볼 때 명확하게 침이 가리키는 현재의 시각이 아닌, 수많은 부속품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보려고 했던 꼴이었다. 시계는 하루 24시간 속에서 현재의 시각을 알려 준다. 시계공이 아닌 이상 복잡한 시계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고작 건전지 교체 법과 시각을 맞추는 다이얼 사용법 정도만 알아도 된다. 그래도 시계는 이상 없이 작동한다. 저자는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모호한 것을 알아내려 하지 않고 명확한 것을 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중략) 숨은 뜻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리라고 믿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부둥켜안았다."(184쪽) 그는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임을 믿기로 선택하고 현재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인생의 시계가 가리키는 현재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소명 지도사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 안에서 나를 잘 알 수 있는 지인 30명에게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피드백을 통해 중복되는 키워드들을 카테고리화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소명이 무엇과 관련 있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무의식 중에 내가 이미 직장에서 소명 의식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소명은 완전히 새롭고 특별하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소명은 현재 작은 일상 속에 있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데 달려있다. 우리의 성화는 일을 바꾸는데 달린 문제가 아니라 평상시 자기 자신을 위해 하던 일을 하나님을 위해 하는 데 달려 있다."(313쪽)


회사 동료가 제주 올레길을 다녀와서 해준 말이 있다. 올레길은 안내 표시를 잘 찾아서 따라가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쉬워서 마치 인생길 같았다고 한다. 미지의 길을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가야 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미래를 살 수 없기에 저자는 미래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능성이다."(259쪽) 또한 그는 미래의 소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 분임을 보여 주는 증거다. 최후의 말은 하나님께 있다. 그것은 영광의 말이 될 것이다."(350쪽) 인생 전체가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현재를 거룩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분명 영광스러운 상급을 줄 것이다. 마음속에 '주 은혜임을'이라는 찬양이 울려 퍼진다. '세상 소망 다 사라져 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신이 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냐며 신을 원망해 본 적 있는가? 중 3 때 처음 띠동갑의 이복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이 이혼했던 순간, 고 3 때 전투조종사라는 꿈의 날개가 꺾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순간, 군대에서 귀신 들린 상관에게 시달리며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리고 30대 초반, 가장 소중한 엄마를 갑자기 떠나보냈던 순간에 나는 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엄마를 잃고 나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얻었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나는 타인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암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위로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라고 했다. 엄마는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 하나였던 것이다. 나밖에 모르고 살았던 굴레에서 벗어나 나는 많은 생명을 몸짓이 아닌 눈짓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신을 원망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인생이 역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신이 없다면 있지도 않은 신을 원망하는 것 또한 코미디가 아닐까. 썩어가는 늙은이가 아닌 익어가는 어른이 되려면 삶에서 고난은 필수다. 그렇다면 고난은 원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긍정할지 부정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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