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간 미션 점검! 경쟁/참고 도서 30권의 목차들을 비교, 분석해 봤는가? 그리고 내가 쓸 책의 목차 초안을 잡아봤는가? 차분하게 시간을 들여 목차부터 잡아보자.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
참존화장품은 고객이 직접 샘플을 써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샘플만 써봐도 안다는 광고 카피와 참존의 모델인 청개구리를 기억한다면? 일단 Z세대는 아니다.
아무튼 화장품은 샘플만 써봐도 알듯이 책도 샘플 원고를 써보면 답이 나온다. 지난 시간에 일반적으로 30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 때 40개 목차를 세우고 한 목차당 A4 2.5페이지씩 총 100페이지 원고를 쓴다고 했던 것 기억나는가? 40층짜리 뼈대를 세웠다면 이제 1층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면 된다. 이때 1층을 잘 설계하고 견고하게 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나머지 39개 층도 동일한 퀄리티로 무너지지 않게 쌓을 수 있다.
1층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샘플 원고다. 혹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책은 프롤로그부터 쓰는 거 아니야?' 정답은 없다. 그러나 프롤로그(책을 여는 글)와 에필로그(책을 닫는 글)는 원고 집필을 다 마친 후 마지막에 쓰는 게 일반이다. 왜냐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다음 시간에 알게 될 '출간기획서'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굳이 프롤로그를 미리 쓸 필요가 없고 둘째, 출판사와 계약한 다음 편집하는 과정에서 전체 콘셉트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편집까지 다 마친 후 마지막에 출간을 앞두고 작성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자, 이제 샘플 원고부터 써보자. 1개 목차를 '한 꼭지'라고도 부른다. 한 꼭지는 A4 2.5페이지, 공백 포함 약 5,000자 내외로 분량을 잡고 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책의 성격에 따라 목차 수와 한 꼭지당 분량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를 설명하니 감안하길 바란다.) SNS나 연재 등을 통해 미리 원고를 써놓은 경우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5,000자의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하지만 포기하긴 이르다. 시작이 반이라면 목차 세우기가 책 쓰기의 50%라고 했던 말 기억나는가? 절반인 목차를 세웠다면 나머지 절반 중 이제 원고 집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때 샘플 원고가 또 절반을 차지한다. 즉 목차 세우기 50%, 샘플 원고 25%, 나머지 기타 등등이 25%가 되는 것이다. 대박, 그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다시 원고를 처음으로 집필하던 2018년 6월로 돌아가보자. 나는 40개 목차를 완성한 다음 <대한민국에서 30대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가제를 붙였다. 30대에 갑자기 높아진 삶의 난이도에 당황한 나는 머릿속이 온갖 질문들로 가득 찼다. 그것이 자연스레 목차가 되었다.
그다음으로 샘플 원고 '1.1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를 썼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공개한다. 어차피 나는 강백호가 되기로 하고 책을 썼다. 성장 캐릭터로써 계속 책을 쓴다면 처음이 어설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되는 거니까.
<대한민국에서 30대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1장. 서른, 가장 잔인한 시간
1.1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초등학생이 이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듯, 20대 시절의 나는 서른이란 나이가 아득한 별빛같이 느껴졌었다. 20대가 되어서도 ‘30’이라는 나이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마치 30일이 오지 않는 2월 같은 20대를 보냈다고 해야 할까. 20대에 나는 서른 살의 꿈을 그려보곤 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서른의 모습은 한마디로 성공한 샐러리맨이었다. 스마트해 보이는 안경을 쓴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를 입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안경에 비친 모니터 화면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군무를 추고 있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면 셔츠의 단추를 두 개쯤 풀어헤친 채 중형 세단에 몸을 싣는다.
세계 10대 야경 중 하나라는 한강의 야경과 일직선으로 흩어지는 불빛을 배경으로 차가 미끄러지듯 달린다. 오피스텔에 도착해 뜨끈한 물줄기에 몸을 적신다. 샤워를 마치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며 가운을 입는다. 냉장고 문을 열자 형형색색의 캔맥주가 오와 열을 맞춰 흐트러짐 없이 서 있다. 캔 뚜껑을 따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품이 흘러내린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으로 야경을 지그시 바라본다. 시라도 한 편 쓰고 싶은 밤이다.
20대 내내 미뤘던 불안감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는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나는 30대가 되었다. 서른 살이 된 현실 속의 나는 정말 샐러리맨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그냥 샐러리맨이었다. 사생결단으로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대기업. 나는 꿈꾸었던 모습처럼 잘 다린 와이셔츠에 정갈한 갈색 빛깔 새 구두를 신었다. 패션 아울렛의 영업 관리직이 된 나는 매일 쌓여있는 옷 박스와의 전쟁을 치렀다. 출근하자마자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쭈글쭈글해졌다. 구두는 1달도 못 가 헌신짝이 되었다. 작은 점포에 협소한 창고 공간. 그 창고 안에 더 작은 고시원 같은 사무실이 있었다. 마치 나는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인형이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의 맨 마지막 쪼꼬미 같았다.
매일 13~14시간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면 중형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퇴근길은 항상 한강 둔치 자전거 길을 이용했다. 한강 야경을 배경으로 달릴 때면 오늘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이 자전거 페달인 양 열심히 밟아댔다. 그렇게 어머니와 사는 월세 집에 도착한다.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것도 아닌데 빛의 속도로 씻고 눕는다. 이때부터 자유시간이지만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가리킨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고 했던가. 눈이 자꾸 감긴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과 싸운다. 눈에 더욱 힘을 주고 버텨보지만, 번번이 나는 참패한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아…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나는 직장 생활의 사계절을 겪은 후 회사 선배와 상담한 적이 있다.
나: “선배님,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왜 자꾸 회의감이 들까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 “그래, 힘들지? 하지만 네가 회사 생활을 얼마나 해봤니? 최소 3년은 해봐야 회사가 어떤 곳인지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어.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면 좋겠다.”
선배의 조언대로 버텼다.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 잘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특진할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입사 동기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회사에 다니는지 궁금했다.
나: “나는 자꾸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서 매일 13~14시간씩 보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열심히 할수록 자꾸 허무해. 너는 어때?”
동기: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30대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그냥 열심히 하는 게 답이야.”
‘누구나 다 이렇게 사는 거니까’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버티다 보니 어느덧 회사 생활 10년 차에 30대 중반이 되었다. 나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아빠가 된 선배들은 하나같이 “출퇴근할 때 항상 아기가 자고 있으니 주말에도 아빠 얼굴을 못 알아본다”라는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올해 초에 태어난 첫아이에게 최소한 아빠의 얼굴이 어떤지는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아이가 자라가는 경이로운 모습을 내 두 눈에 담고 싶었다.
나는 지금 초보 육아빠로 살고 있다. 지인들은 “쉴 수 있는 너도 부러운데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아이가 더 부럽다”라고 한다. 나도 쉬어서 좋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로 받는 돈은 월 100만 원 남짓. 그마저도 4개월째부턴 절반으로 줄어든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내의 수입까지 합치면 월 150만 원 정도가 된다. 아이의 분유, 기저귀, 이유식 재료뿐 아니라 카시트, 유모차, 보행기 등 들어가는 돈이 끝도 없다.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 버티다 보니 통장은 어느새 ‘텅장’이 되었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견디며 살고 있다. 이제 조금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요병에 시달렸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휴직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저녁만 되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평일도 주말 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주말이 되어야만 안도감이 들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을 아내와 충분히 상의했기에 아내는 마음 편히 쉬라고 위로해 준다. 이런 아내가 세상에 어디 있나 싶어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 단체 채팅방을 통해 회사 동기의 특진 소식, 후배의 승진 소식이 들려온다. 불안감이 다시 엄습한다. 나는 또 나에게 질문한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육아는 부부가 둘이서 분담해도 너무 힘들다. 나보다 먼저 아빠가 된 친구가 ‘육아는 하루 24시간 안에 36시간 분량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특히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 별짓을 다 해봐도 그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총체적 난국으로 멘붕,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최근엔 아이가 감기로 1주일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고사리 같은 손에 주삿바늘을 꽂자 몸서리치며 역대급 통곡을 했다. 1주일간 우리 부부는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며 아이를 간호했다. 힘들고 예민해지는 나날들. 그럼에도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잠시나마 천국을 경험한다.
여전히 불안하고 질문 가득한 인생이지만, 나는 지금 돈으로 살 수 없는(사실 돈을 포기해야 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가 “지금 너는 잘살고 있니?”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그래도 지금 나는 잘살고 있다!”
샘플 원고를 썼을 때 책쓰기 학원에서 나는 글이 밋밋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자료를 최대한 글에 많이 녹여내라는 주문을 받았다. 평양냉면을 함흥냉면으로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라 전문가를 설득할 수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고쳐서 갔다니 이번에는 또 너무 자기 생각이 빠져서 거시기하단다. 함흥 물냉면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빔냉면을 만들어버렸나 보다. 이렇게 나는 샤워실의 바보처럼 손잡이를 뜨거운 물로 돌렸다 차가운 물을 돌렸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절한 자료와 알맞은 내 생각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조금씩 감을 잡아갔다. 나무는 흔들리며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흔들리면 그만큼 자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된다.
자연스레 이번 시간 미션이 뭔지 감이 오지 않는가?
A4 2.5페이지 분량으로 샘플 원고를 하나 완성해 보자. 그리고 주변에 보여주며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받아보자.
다음 주 수요일에는 일곱 번째 단계, '대면 면접 전에 서류 면접 통과가 우선'으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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