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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1년 전, 긴박했던 밤을 기억한다. 공포로 얼어붙었고, 분노로 불타올랐다.

무장한 군대에 맞선 작은 시민들이 있었다. 은박 비닐 담요를 덮어쓴 키세스, 남태령 대첩으로 연대한 응원봉과 농민이 있었다.

어제 *아둘람의 집에서 ‘엘리야의 언덕’ 개관 예배를 드렸다. 엘리야의 언덕이란 새로운 신학적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루터가 집의 식탁에서 탁상담화를 통해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듯,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적 성찰의 장을 지향한다.

작은 예배를 위해 나는 시낭송으로 섬기게 되었다. 로뎀 나무 아래 지쳐 쓰러진 엘리야와 그를 일으킨 하나님을 묵상하며 지난 1년을 돌아보았다. 돌무덤 같던 절망과 꽃처럼 피어난 기쁨, 촛불로 타오른 소망이 시간의 점으로 알알이 박혀 있었다.

시를 쓰고 낭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암흑 속의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는 작은 손길과 작은 눈빛, 작은 기도를 통해 조금씩, 그러나 깊이 회복할 것이다.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김현중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나는 지쳤습니다
내 작은 외침이
내 작은 기도가
무슨 소용입니까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나는 도망쳤습니다
메마른 대지의 신음에 돌 하나
불 꺼진 교회의 침묵에 돌 하나
나는 뭘 할 수 있습니까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돌무덤이 나를 짓누릅니다
이 거대한 무너짐 안에서
작은 틈으로
숨만 겨우 쉴 뿐입니다

너는 나와서 내 앞에 서라

아둘람 굴을 보라
가장자리에서 모여든
작은 이의 손에 들린
꽃 한송이를 보라

너는 나와서 내 앞에 서라

언덕 위의 모닥불을 보라
어둠을 밝히려 모이는
작은 이의 눈에 담긴
불꽃을 보라

너는 나와서 내 앞에 서라

상한 갈대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으로 타오를
칠천의 촛불을 보라

거대한 음성이 세미하게 들립니다
세미한 소리가 거대하게 울립니다
동굴을 나와 언덕으로 나아갑니다

나 홀로 앞서 걷지 않겠습니다
함께 느리게
그러나 반드시 멀리 가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지를


*아둘람의 집이란?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53060879&code=23111694&cp=nv


※엘리야의 언덕 개관식
https://www.youtube.com/watch?v=r-oCYzDRV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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