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의 매력에 푹 빠진 아내
분데스리가 체험
by 책 쓰는 중고차 딜러 Jun 25. 2020
무채색 배경 속 튀는 원색
독일을 색깔로 표현하면 무슨 색일까? 독일에서 한 달 살기 중 절반 이상을 보낸 우리 부부에게 독일은 회색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럽의 이미지와 비교하면 독일은 소박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이었다. 특히 패션은 수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당시 겨울이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하나 같이 검정 패딩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독일 공식 국민 유니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눈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눈에 들어오는 원색 옷에 두건과 목도리, 수건 등으로 치장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뻘겋거나 시퍼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베를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닌가?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였던 독일인에게 저런 면이 있었다니! 어르신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어색했지만 밉지 않은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슈퍼마리오와 스머프들이 랄랄라 한 데 어울린 듯했다. 그 긴 행렬이 향한 곳은 독일 프로축구팀 헤르타 베를린의 홈구장 ‘올림피아 슈타디온 베를린’이었다. 이날은 세계 최고 축구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의 여러 팀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원정팀 바이에른 뮌헨과 홈팀 헤르타 베를린의 경기가 있었다. 독일인이 그렇게 흥이 많고 표정이 밝은지 축구장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1달 전에 예매한 분데스리가 티켓.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왼쪽) / 헤르타 BSC 베를린의 홈구장 ‘올림피아 슈타디온 베를린’ (오른쪽)
이보다 재미있을 수 없는 반전 드라마
1달 전에 한국에서 티켓을 예매할 때만 해도 잔뜩 흥분한 나와는 달리 아내는 시큰둥했다. 아내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가 아직도 황선홍 아저씨인 줄 아는 듯했다. 2002년 월드컵 때만 반짝 관심을 가졌던 전형적인 ‘축알못’이었다. 축구장에 가봤을 리 만무했다. 그런 아내가 평생 처음 축구장에 가서 직관한 경기가 분데스리가였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눈팔 수 없는 한 편의 반전 드라마였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홈팀 베를린이 선취골을 넣으며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만년 챔피언 뮌헨을 상대로 베를린이 3년 만에 득점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며칠 전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호 아스날을 5:1로 대파한 뮌헨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었다.
상황을 뒤집기 위해 뮌헨은 레반도프스키 선수를 교체 투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TOP 3 안에 드는 레반도프스키의 플레이를 직접 보니 심장이 거의 람보르기니 엔진처럼 마구 날뛰었다. 얼마 전 경기의 여파였을까? 레반도프스키는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에 나동그라지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역시 에이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레반도프스키는 동점 골을 넣으며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건져냈다.
이날 아내는 분데스리가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응원의 열기, 경기의 박진감, 흥분한 관중, 반전의 결과 등 90분 동안 지루할 틈 없는 드라마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특히 아내는 우리 앞줄에 있던 노부부에 대해 인상이 깊었다고 했다. 한 명은 베를린 유니폼을, 다른 한 명은 뮌헨 유니폼을 입고 각자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을 때 약 올리듯이 일어나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부부도 독일 노부부처럼 알콩달콩 재미있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아래에 알콩달콩 재미있는 노부부가 앉아 있다.(왼쪽) / 꼭대기까지 가득 찬 관중. K리그에도 이런 날이 올까?(오른쪽)
경기 외에 또 다른 반전은 관중의 태도였다. 잘 안 보인다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질 않나 연신 담배를 피워대질 않나 경기 내내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아무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재미있었던 점은 상대 팀이 반칙을 범하면 관중들이 하나같이 오른팔을 뻗으며 야유를 퍼붓는 모습이었다. 평소 ‘엄근진’처럼 보이는 독일인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어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분데스리가는 왜 인기 있을까?
전 세계 프로축구리그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분데스리가의 비결이 뭘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분데스리가’라는 말에 담긴 뜻과 관련이 깊다. 분데스리가의 ‘분데스’는 ‘연방’, ‘리가’는 ‘리그’를 뜻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은 오랜 세월 여러 개로 갈라져 있던 왕국을 하나로 통합하며 탄생한 국가다. 그래서 독일인은 출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역 간의 축구 경기가 나라 간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분데스리가만의 독특한 특징은 클럽 자체나 클럽 팬들이 클럽 지분의 51%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대자본의 유입을 막아 리그의 상업화를 지양하고 자국 팬을 위한 순수성을 지향하기 위함이다. 평균 4만 5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분데스리가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정책이다.
한편으로 독일은 ‘워라밸’이 너무 잘 정착되었지만, 놀거리가 별로 없는 심심한 나라이기에 축구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밤새 잠들지 않는 유흥의 천국 대한민국과는 달리 독일의 밤은 너무 일찍 찾아왔다. 당시 겨울이라 더욱 해가 짧았는데 저녁 6시만 되어도 마트에 가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었다. 가게들이 문을 일찍 닫았고 우리나라에는 골목마다 흔한 24시 편의점도 보기 어려웠다.
분데스리가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우리나라 최초로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 진출한 1978년이었다. 나는 차범근 선수를 비운의 국가대표 감독, 독특한 말투의 해설위원, 차두리 아버지로만 인식했다. 그런데 차범근 선수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1976년 대통령 배 국제 축구대회(박스컵)에서 차범근 선수는 말레이시아에 1:4로 뒤지던 상황에서 종료 7분을 남겨두고 혼자 3골을 몰아치며 보는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2년 후 1978년 박스컵에 초대받은 프랑크푸르트팀 코치는 차범근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콧대 높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갈색 폭격기’, ‘차붐’이라 불리며 분데스리가를 씹어 먹어버린 독보적인 동양인이 바로 차범근 선수였다.
겔스도프에게 살인 태클을 당해 치명상을 입은 차범근(사진=스포토픽) (왼쪽) / 선수 시절 차범근(사진=아름다운동행) (오른쪽)
용서하는 자의 품격
그런데 차범근 선수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 1980년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상대 팀 선수 겔스도프의 살인적인 태클로 선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상을 입었다. 졸지에 에이스를 잃은 프랑크푸르트 팬들은 물론, 언론도 들끓었다.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겔스도프 선수의 형사처분까지 거론됐다. 한창 상승세에 척추에 금이 가 장기간 결장해야 했던 차범근 선수는 분명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겔스도프 선수를 아무 조건 없이 용서했다.
그는 이렇게 성명을 냈다. “고소는 없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는 그를 용서한다.” 이로 인해 차범근 선수는 겔스도프 선수와 절친이 되었고 스포츠맨십을 넘어 성숙한 인격으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많은 독일 팬이 지금도 차붐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경기력뿐 아니라 그가 독일 땅에 남긴 따뜻한 정신에 있지 않을까?
“오빠, 싸운다 싸워!” 경기 도중 시비가 붙어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엉겨 붙은 모습을 보며 아내가 외쳤다. 분데스리가 직관에 싸움 구경까지 덤으로 볼 수 있었지만 긴박하던 경기의 흐름이 끊겨 아쉬웠다. 축구는 몸싸움이 불가피한 스포츠라 반칙으로 경기가 과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심판이 존재하고 그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은 심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가 내린 판정에 승복하는 것이다. 선수는 심판이 호각을 불기 전까지 그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말고 경기를 지속해야 한다. 선수에게는 심판의 책임과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의 주심과 두 명의 부심, 총 3명의 심판은 경기 내내 무전기로 소통하며 일치된 하나의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 요즘에는 ‘VAR(비디오 보조 심판)’까지 있어 거의 완벽한 판정이 가능해졌다. 관중의 눈 또한 속일 수 없다.
그런데 간혹 심판의 판정을 무시하고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선수가 있다. 적정선을 넘은 그는 받지 않아도 될 경고를 받는다. 이때 자신의 고집을 꺾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끝까지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심판에게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그가 진짜 심판을 받는다. 빨간 카드와 함께 그가 있어야 할 경기장에서 방출된다. 그의 빈자리는 팀에 악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선수일수록 파급력이 증대된다. 팀은 패배하고 팬들은 실망한다.
선수의 자질은 실력 이전에 분별력이다. 삼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심판에게 보복한다. 이류는 심판을 원망하며 경기 중에 교묘히 가해자에게 복수한다. 일류는 오히려 가해자를 품으며 흥분한 동료들까지 진정시킨다. 향나무는 자신을 베는 도끼에도 향을 남긴다. 한 선수로 인해 감동한 양 팀 선수와 관중은 수준 높은 경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용서'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내가 뜻매김해본 용서는 ‘심판의 무거운 책임을 벗어던지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좀 더 확장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죄에서 벗어나 은혜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고 승리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플레이를 지속함을 뜻한다. 판정은 심판에게 맡기고 나는 경기하는 자로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좀 더 확장된 이상적인 용서는 자신과 경기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잠깐의 사고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멋진 경기를 누리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선수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용서의 큰 힘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베를린에서의 야간 행군(?)
경기가 끝나고 우리 부부는 한껏 들뜬 채로 베를린 거리를 걸었다. 한인 교회 교인에게 추천받은 독일 정통 요리 ‘학세’를 맛보러 갔다. 학세는 소나 돼지 등의 발목 윗부분을 구운 요리로 우리나라 족발을 튀긴 듯한 비주얼과 식감을 자랑한다.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유명한 학세 가게가 있는 ‘소니 센터’로 갔는데 독특한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이었다. 이곳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만남의 광장 중 하나라고 한다.
‘겉바속촉’의 학세에 맥주까지 한잔하니 몸이 노곤해졌다. 학세도 맛있긴 했으나 느끼함 때문에 우리 부부는 족발이 더 맛있다고 결론지었다. 저녁도 먹고 어두워졌지만,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았다. 베를린 탐방을 하루 만에 하겠다는 무모함이 그제야 실감 났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소니 센터(주소 : Potsdamerplatz, 10785 Berlin)에서 먹은 학세
베를린 장벽에 있었던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를 거쳐 한때는 분단의 상징에서 이제는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에 이르기까지 길치인 남편을 따라 아내는 또다시 1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이날 적어도 3만 보 이상은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만큼 재미있었다.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세워진 베를린 곰돌이 동상을 발견할 때마다 똑같이 흉내 내는 내 모습에 아내는 빵 터졌다.
용서 비는 자의 자세
베를린 행군(?)의 마지막 종착지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다. 이곳은 유대인 추모공원인데 반성과 추모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축구장 3개 규모로 2,711개의 콘크리트 판들이 빼곡히 세워져 있다. 미로와 같이 답답하고 갇힌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수용소에 갇혀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유대인의 고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왼쪽) /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오른쪽)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규모로 추모공원을 만든 독일의 역사의식에 감탄했다.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며 일상에서 추모하려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철저한 역사 교육으로 반성과 추모의 정신을 후대에게 전수하는 독일 시민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일본의 인면수심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에게도 역사적 반성과 추모가 절실하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추모공원을 서울 한복판에 조성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짧은 여정이었지만, 베를린에서 용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아내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용서하는 자의 품격과 용서 비는 자의 자세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 아내의 다리를 몹시 아프게 한 나는 용서 비는 자로, 그런 남편을 예쁘게 봐주는 아내는 용서하는 자로 멋진 하루를 마무리했다.
[참고자료]
- 나무위키, ‘분데스리가’
- 스포토픽, “차범근-겔스도프, '살인태클'과 '용서'로 맺어진 인연”, <미디어스>, 2011.8.1.
- 박명철, “그의 축구에선 영혼의 온기가 느껴진다”, <아름다운동행>, 2010.7.11.
- 정원식, “[참사 그 후 (5) 독일 홀로코스트]집 앞에, 일터 옆에…박물관 아닌 일상서 추모와 반성”, <경향신문>, 20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