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장르만 로맨스>
김현이 북콘서트에서 유진과 함께 집필한 소설 <두 남자>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그 소설처럼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관계들은 이름 날렸던 소설가를 사랑한 작가 지망생, 이웃누나와 시간을 보내는 남학생, 친구의 전부인과 사귀는 남자의 관계다. 이렇게 나열하면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이야기라며 진부하다 말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 예상과 사뭇 달라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남자 소설가를 사랑한 작가 지망생이 남자라는 점, 남학생이 시간을 보내던 이웃 누나는 유부녀이며 그녀는 단지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이라는 점, 주인공 전부인의 연인이 주인공과 죽마고우인 출판사 사장이라는 점은 그리 진부하지 않은 설정이었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는 극중 관계의 부분부분을 살짝 비틂으로써 큰 신선함을 전해준다. 모든 관계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든 캐릭터에 시선이 가게 되는 영화였다. 연기를 했던 조은지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인지,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연기와 개성이 살아숨쉬는, 쾌감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캐릭터는 정원이었다. 정원은 자유롭고 통통 튀는 사람으로, 연령과 상관없이 성경과 진짜 친구가 되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맑은 정서가 느껴졌다. 용감하고 순수하게 사랑하던 유진도 기억에 남는다. 글에 있어서도, 사람에 있어서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캐릭터였기 때문인지 관객들이 그의 사랑에 응원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상영관을 나오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 캐릭터는 성경이었다. 첫사랑의 열병을 마음 아리게 잘 표현해줬기 때문에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성경의 에피소드에 눈물이 핑 돌면서도 귀여웠으니 연기가 정말 좋았던 것이다. 김현은 말해뭐해, 코미디를 이렇게까지 잘 살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영화관에서 이렇게 웃은 게 오랜만이었다. 쓰고나서 보니, 캐릭터에 대한 애정인지 배우들에게 보내는 찬사인지 헷갈리지만, 암튼 전부 좋았다. 크리스마스 옴니버스 영화도 아닌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