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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Jan 19. 2024

눈을 맞으며 눈이 맞았던 날을 생각하다

친구의 일기를 보고 픽션 써보기

- 모든 이야기는 내 상상 그러니까 픽션입니다.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게 해 준 연도(가명) 고마워!


23년도 12월 어느 날, 연도 씀.


겨울은 덮는 계절이다. 쌀쌀해지는 날씨를 피해 문을 꽉 닫고, 옷을 더 여미고, 지난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인연들을 나열해 본다. 그들과의 추억 위로 소복소복 눈이 내려오는 그런 시간.


정말 눈발이 내린다. 사무실의 많은 눈들은 창문을 향한다. 문을 열고, 내리는 눈의 결정을 바라본다. 흔한 풍경인데도 참 아름답다. 집에 가는 길이 많이 미끄럽긴 하겠지만 뭐, 겨울이지 않은가. 평소보다 다리에 힘을 주고 걸으면, 괜찮을 것 같다. 지난주 어쩌다 보니 배드민턴을 더 열심히 치는 바람에 허벅지가 조금 아프지만, 괜찮을 것 같다. 내리는 눈을 지켜보느라 하늘로 고개를 치켜세우다 보니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눈보다 더 순수하고, 맑고, 착하고, 그만큼 더 애틋해진다. 머루와 달록이의 얼굴. 그리움이 멈추지 않아서 다시 또 핸드폰을 켜본다. 갤러리가 닳도록 들어가 본 것 같지만 또 재생한다.


남아있는 사진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걸, 더 내가 많이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걸. 말과 생각의 끈을 끊임없이 풀어본다. 후회가 담긴 문장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떠난 너희의 부재가 오랜 기간 아프고 안 괜찮음이 오히려 괜찮았던 지난 시간도 떠올린다. 온전히 아프고 온전히 슬퍼하고 온전히 괜찮지 않음. 이 행위와 감정, 느낌은 유난스럽게 부재를 겪는 나만의 방법이 된 듯하다. 물론 지금도 안 괜찮지-않지-않다. 한번 시작하면 침잠하는 기분은 꽤 오랜 시간 숨을 참게 만든다. 심폐 능력이 강화되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먹먹함. 하염없이 길어진 후회의 끈을 싹둑싹둑 잘라내 버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그 찰나 카톡, 하고 단톡방의 메시지는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현실을 인식하는 건 캘린더 속 약속들이다. 이번 연말은 왜인지 이미 벌써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졌다. 평소보다 더 많은 느낌이다. 물론 좋다. 그리고 사실 힘겹다.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 레벨은 넘어선 것 같아 억지로 포션을 섭취하고 있다. 겨울이 저물어가는 것처럼 해가 끝난다는 것은 이렇게 무리하는 매력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나면 다 즐거우니, 견뎌낼 수 있다. 다양한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고 듣는 이야기들은 뉴스레터 요약본을 읽는 것 같아 즐겁다. 어떤 이는 생생하게 살았고 또 누구는 의외로 단조로운 날들을 넘기고 있었다. 달력이 넘어가는 속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인연은 눈처럼 찾아오는 것 같다. 갑자기 머리와 어깨에 닿고 나서야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타났다가 금방 녹는다. 만지려 느껴보려면 사라진다. 종종 이 눈은 질퍽거리기도 하고, 발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내딛어야만 넘어지지 않는다. 올해도 꽤 많은 눈을 마주쳤다, 고 담담하게 말을 해도 되겠지. 어제 만났던 사람과 대화는 겨우 끝이 났다. 이번 해는 옅은 어둠이 끊어질 듯 끊이지 않게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지. 밝은 사람들을 만나 그 에너지로 왕창 광합성을 했음에도 집에 돌아온 뒤 조금씩 남아있는 복잡한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 이 감정을 다 벗어날 수 있을까.


추천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한 <안전이별(Stay or leave)>. 몇 장 펼치지 않았지만 벌써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내게 딱 맞는 사람이란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지닌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심껏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실 크게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흘러 흘러 그런 존재가 나를 찾아올 수 있기 위해 창문을 더 깨끗이 닦아 두어야겠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보였을 때 당장 달려갈 수 있게, 신발끈을 조이고 있어야겠다.


나는 겨울을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 글을 마치며, 연도가 조용하고 따뜻한 눈 나리는 겨울 풍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루와 달록이는 연도의 오랜 반려견들이며 작년에 둘다 하늘나라로 갔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다면 이 글을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크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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