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베스트셀러 그리고 생존
지난해 12월,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했다. 전자책 판매량까지 더하면 무려 120만 부이다. 책과 거리가 먼 사람에겐 단순한 ‘수치’에 불과할지 몰라도, 책과 일련의 연을 맺는 사람에겐 놀라운 ‘사건’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예전처럼 수백만 부씩 책이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국내 장편 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360만 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700만 부)도 지금이라면 100만 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최근 5년을 기준으로 100만 부를 돌파한 소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페미니즘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 『82년생 김지영』이 전부이다.
소설은 희곡을 밀어내고 오랜 기간 도서 분야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소설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YES24가 집계한 2021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 도서의 분야별 분포도를 살펴보면 ‘소설·시·희곡’에서 17권으로, ‘경제경영’ 다음으로 많은 도서가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소설이 가진 권위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4월 기준, YES24 베스트셀러 top50에서 소설은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2권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경제경영 관련 책들이었다. ‘달러구트’ 시리즈의 성공은 이처럼 소설의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낸 결과인 만큼 그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어느 분야든 트렌드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연간 독서량이 마법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분야에 따른 판매량은 돌고 돈다. 그런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문학 실태 관련 조사에서 밝힌 ‘국민의 문학 독서율 43%, 평균 연간 문학 독서량 2.3권, 평균 연간 문학도서 구매량 1.3권’이란 수치는 소설과 문학의 위기를 가늠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문학 부진 원인 중 ‘시간이 없어서(35.7%)’ 다음으로 위치한 ‘문학책이 흥미롭지 않아서(30.6%)’는 창작과 연관된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소설이 독자의 흥미 범주에서 점차 멀어지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현실도 더욱더 팍팍해지고 있다. 소설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소설 관련 강좌에 사람이 쉽게 모이지 않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몇 년 전에 글쓰기 열풍이 불 때 도서관 등에서 소설 쓰기 강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올해엔 관련 프로그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앞선 문학 실태 조사에 따르면 글만 써서 먹고사는 순수 전업 문학 작가는 불과 13%에 불과했다. 그러한 데는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실제 내 주변만 둘러봐도 이러한 통계가 사실에 가까움을 증명할 수 있을 듯한데, 직접적으로 닿는 인연 중에 문학 집필로 먹고사는 사람은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의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은가 한다면 상대적일 뿐 절대적으로 많다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이 수입을 창출하는 ‘주업’을 하면서 ‘본업이자 부업’인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일부는 트렌드에 맞춰서 웹소설로 펜의 방향을 돌렸는데, 웹소설은 수요만큼이나 공급도 상당한 영역이다. 어느 분야든 글을 쓰며 밥을 먹고 사는 일이란 여간 녹록지 않다.
얼마 전에 소설 공모전에 투고했다. 원고지 100매에 불과하지만, 소설을 쓰며 처음으로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다. 혹여나 판타지 소설 같은 결과가 벌어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세상에 매력적인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의 시작이 마침표가 아니었으면 하는 작지만 거대한 바람이 있다. 소설을 쓰며 적확하게 알게 된 사실은 소설이 오래도록 왕좌를 지켜온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찬란한 매력을 필자가 아닌 수많은 독자가 알기를 바라는 건 작은 욕심인 걸까?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수많은 소설이 독자들의 손에 가닿아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덧) 1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도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