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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영 Dec 14. 2021

LP에 기대어하는 말


작년에 처음 자취를 하면서 동시에 시작한 취미가 있다.

아날로그 취미의 대명사인 LP 듣기다.


나름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감성적인 인테리어에도 한몫을 더할 수 있어 보여 턴테이블을 들여왔다.

텅 비어 있던 책장에는 LP들을 본격적으로 채워 넣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매일 듣지는 않았지만 막상 틀으면 만족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출근하기 전 귀를 찢는 알람이 억지로 잠을 깨워 비몽사몽 한 시간,

퇴근 후 빨리지는 겨울밤을 뒤로하고 들어와 맥주 한 잔을 할 때,

통창을 넘어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주말 아침에 틀을 때면 무미건조한 공간이 훌륭하게 메꿔졌다.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집 앞에 LP가게에 가는 일이 잦아졌고

사장님이 나의 얼굴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음반도 추천해주시고 대화도 점차 많아졌다.


주말마다 가게에 찾아가면서 내가 사장님께 배운 건

‘좋아하는 것의 실체 파악’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법’에 대한 것이다.


처음 사장님께 음반 추천을 부탁드릴 때를 되짚어보면 정말 추상적으로 말했던 것 같다.

스트리밍으로 우연히 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보여주면서 이런 비슷한 무드가 없냐고 물어봤고 

곤혹스러워하셨지만 이내 귀를 사로잡는 앨범을 가져와 틀어주셨다. 

이후에도 방문할 때마다 추천해주시기를 부탁드렸고

선택해가는 것들을 보면서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정확히 규정해 주셨다.

알고 보니 나는 하모니가 있고 강력한 가창력과 함께 적당한 리듬감이 있는 소울발라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된 후로 왜인지 모르겠지만 

LP를 사고 음악을 듣는 일을 더 재미있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음악이 만들어진 시기가 1960년대인지 70년대인지, 어느 레코드사에서 만든 것인지, 

흥행은 잘 되었었는지 등등 이전에는 그냥 LP를 고르고 돈을 내고 가져가는 것이 전부였다면 

기왕 듣는 거 좀 더 이해하고 귀에 담고 싶어졌다.

좋아하던 것이 모호했던 나는 실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이를 향해 마구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장님은 음반만 추천해주고 끝내지 않으셨다. 

앞서 말했듯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사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시도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은 무궁무진하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좋은 휴식은 필수고 좋은 휴식을 위해선 당연히 생활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해주는 취미를 잘 골라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취미를 시작하지만 실상 해보면 쉽지만은 않다. 

흥미로 혹해서 접근하지만 금방 싫증 내고 그만둔다.

마음속에 ‘취미니까 그래도 돼’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고 나 역시도 많은 것을 접해보고 이내 멀어졌다.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렇게만 해서는 그 취미가 담고 있던 진짜 재미를 제대로 못 보고 떠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사장님은 이제 막 LP를 접하면서 ‘이번에도 금방 멈추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해결법을 일러줬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남을 많이 신경 쓰고 살게 된다.

나는 특히나 성격이 소심하기에 누군가의 눈치를 많이 본다.

일상생활에서 이러다 보니 취향도 눈치를 본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데 괜찮을까?’ 라던가 

‘사람들이 많이 듣는 노래가 더 좋은 거 아닐까?’ 라던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감추곤 한다. 

그런데 LP를 골라 가면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데 취향에 타협이 필요할까?’ 이 물음은 나의 취향에 대한 불신을 씻어내렸고

앞으로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이 장르를, LP를 듣는다는 것 자체를 깊숙이 좋아해 보겠다 다짐을 했다.

 

그다음으로 사장님은 좋아함에 확신을 가진다면
이제는 그 행위의 빈도를 높이라고 했다.
 

LP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많이 들어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깊게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듣던 노래가 아닌데도 귀에 꽂히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경계를 넓혀가고 음악을 알고 듣는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했다. 

지금 내게 최애인 소울발라드 장르에서 얼만큼 더 다른 것을 좋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친해지게 될 음악이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LP에 기대어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잘 좋아하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만나는 빈도를 늘려보자.

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것이 내 삶에 줄 수 있는 진정한 가치를 분명히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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