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io mendes - Fool on the hill
장마인지, 열대 기후의 우기인지 모를 비가
한바탕 쏟아진 후에 강렬한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오후 시간에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햇살이 살에 꽂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열기가 이어지던 주말에 집을 나설 때,
문득 ‘아직 많이 남은 더위를 잘 보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뜨거움과 잘 어울리는 노래가 곁들여지면 괜찮을 것 같아 LP가게로 갔다.
이야기를 들어본 사장님은 몇 가지 LP를 틀어주셨는데 특히 보사노바를 강력 추천해주셨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보사노바는 미국에서 성행하던 ‘재즈’와
브라질 고유의 음악 ‘삼바’의 결합으로 탄생한 장르다.
1960년대 재즈보다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는 락과 소울 음악이 수면 위로 나오면서
비주류로 몰리던 재즈가 보사노바를 새로운 탈출구로 삼으며 나타난 것이다. (출처: 벅스 뮤직)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앨범은 'Sergio mendes의 Fool on the hill'인데
보사노바가 미국에서 주목받을 때 낸 곡이라고 한다.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에 정열적인 브라질 냄새가 가미된 앨범이어서 그대로 집 안 책장에 가져왔다.
LP가게에서도 고음질과 큰 성량으로 들어보고 집에서도 출근길 때마다 틀어 놓다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앨범의 매력은 단색이 아니라 줄무늬의 형태를 띠고 있단 걸.
흘러가는 템포와 멜로디도 그렇고 구성을 봐도 그렇다.
사랑을 구애하고 잃고 식고 다시 구애하듯 다채로운 이야기가 부러지지 않고 흐르듯이 이어진다.
왜 그럴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큰 이유는 ‘날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각보다 아티스트의 작품에 날씨가 미치는 영향은 높다.
간단히 재즈를 놓고 보면 기분 좋은 햇살과 해변이 펼쳐진 미국의 서부는 ‘쿨재즈’의 형태로
동부는 ‘하드 밥’ 형태로 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브라질 출신의 음악가들도 마찬가지 일거다.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봐온 풍경은 어떨까?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그 위에 작열하는 태양빛, 꺼지지 않는 더위, 몰아치는 파도.
모래사장에서 흠뻑 젖을 때까지 뛰고 난 뒤에 움직이는 파도에 바로 뛰어들어 더위를 녹이는 이들.
누가 뭐라 해도 업 앤 다운이 빠르고 유연하다. 이들의 삶이 음악에 고스란히 투영된 거다.
그래서 저 앨범은 정적이면서도 빠르고 뜨거우면서도 차갑다.
한 가지의 위치, 한 가지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들을 때마다 유연하게 변신한다.
유연함.
노래를 들을수록 이 단어를 곱씹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 유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운동을 해도 근육에 무리가 많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딱 맞는 자세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좋은 퍼포먼스가 나오는 법인데 굳어버린 근육들을 잘못 움직이다 보니
쓸데없는 힘이 많이 들어가곤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랬다. 과묵하면 과묵했지, 절대 모임의 분위기에 따라 모드를 바꿔
사람들을 대하는 그런 행동들을 잘 못했다.
사회생활은 해야 하기에 이것저것 리액션은 하지만 “영혼 없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때도 스스로 가둬 놓은 틀을 더욱 깨고 싶었으나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유연한 사람들이 부러웠고 되고 싶었다.
근육이 잘 늘어나서 무슨 포즈든 자연스럽고 어떤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대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그런 유연한 사람 말이다.
그런데 저 보사노바의 음률을 듣다 보니 약간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저들의 유연함의 기원을 보면 뜨거움이다.
가득한 정열이 있어 굳어 버린 것들을 녹여 여러 요소들을 섞어낸다.
지치지 않는 열기가 여러 감정들을 경험하고 노래 안에 담아낸다.
가장 뜨겁기에 가장 유연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우리는 뜨거움을 기피한다.
일상에서 무더위의 한 자리에 놓일 때면 당연히 그늘로 가고
아니면 에어컨 속에 숨어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일을 할 때면 과한 열정은 상처 입을 뿐이라며 스스로의 온도를 높이지 말라고 제어하기까지 한다.
나를 둘러싼 대다수의 환경들은 스스로의 몸을 식히는데 열중하라고 말해준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뜨거움이 주는 효과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열은 무언가를 태워 재로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태우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녹여내 본 적 없는 형태를 탄생시킨다.
내가 그동안 부러워한 유연한 사람들의 속에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뜨거움을 열기를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던 것일 거다.
아마 그동안 내가 유연하지 못했던 건 뜨겁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불씨부터 다시금 높여 굳어진 내 안 곳곳을 녹여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커져가는 열기로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다.
가장 뜨거운 여름 틀어놓은 보사노바 속에서
가장 원하는 모습의 가닥을 다른 이들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