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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영 Oct 10. 2022

찬란함은 더 큰 찬란함을 낳으니까

Noriki - Noriki


뜨거웠던 여름이 갔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을

가장 깊게 느낀 시간이었다.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단연코, 씨티팝이었다.

스트리밍에 그치지 않고 직접 레코드샵에 가 추천받으며

처음으로 씨티팝 LP를 구매해 지겨울 때까지 틀었다.


[Noriki-Noriki]


이번에 산 건, 재즈 퓨전 키보디스트 ‘노리키 소이치’의 솔로 데뷔 앨범이다.

처음 사장님이 틀어주셨을 때, 처음 나온 영어 가사가 담긴 ‘You need me’에 홀려 구매했다.

듣다 보니 보컬곡뿐만 아니라 연주곡들도 무거운 아침을 밝게 변화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들이 모여 있었다.


씨티팝, 이미 우리나라에선 너무나 유명한 음악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여름 하면 당연히 떠오르고 오래된 노래부터 아이돌까지 다양한 세대에게

전파되었고 변형되어서도 들려진다.


모두 알고 있긴 할 거다.

씨티팝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가장 빛나던 버블 시대에 탄생했다.

자본력이 흘러넘치던 일본은 미국, 서양 각지에서 활동하던 베테랑 뮤지션들을

본토로 불러들였고 기본적인 반주부터 프로듀싱까지 도맡게 해

음악의 질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이러한 곡들의 퀄리티는 몇 곡만 들어봐도 체감할 수 있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형언할 수 없지만

항상 꽉 차 있는 세션, 중간중간 치고 나오는 수준급 솔로 플레이,

따라 부르기 쉬우면서 경쾌한 특징이 있는 씨티팝은

찬란한 시간, 뜨겁게 빛나는 시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의 이번 여름을 표현하라 하면 꼭 씨티팝을 내세우고 싶었다.

운동할 때가 아니면 땀이 나는  싫어했었는데

올해를 기점으로 무더운 여름이 좋아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서 말했듯, 살아오면서 보낸 여름 중 가장 특별했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생각이 많은 타입이다.

잠자리에 누울 때면 다음날 무엇을 해야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인지

한참 고민하다 정작 아침엔 아무 곳도 떠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언제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오면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을 가는 게 정말 최선인지, 다른 걸 하는 게 더 값어치 있는 건 아닌지

재고 또 재며, 불안과 불안이 꼬리를 물어 나를 가라앉히곤 했다.


가라앉을수록 부담은 온전히 늘어나고

불편함은 내 주변 사람들이 짊어진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

생각과 행동의 간극을 확 줄이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되묻기보다 박차고 일어섰다.


더위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릴 때쯤

발을 먼저 적시며 여름 대비 준비 운동을 하고 싶었다.

계곡으로 갔다.


남한산성의 한 음식점에서 막국수를 먹고

옆의 다리에서 아이들의 첨벙거림을 구경했다.

한번 더 다른 곳에 갈 때는 목적지에 들어갈 수가 없어

대신 찾아본 계곡을 갔는데

본 적 없던 세차고 하얀 물살 속에 발을 담그며 부정적인 잡념들을 흘려보냈다.


생각보다 그냥 움직여도 어떻게 풀렸고

왠지 본격적으로 움직여도 될 거 같았다.


서핑에 푹 빠져 있는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다 보니

평소에 부러워만 했었는데 ‘이번에 나도 그냥 해볼까?’ 싶었다.

바로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다.

다음날 파도가 좋다며 넘어오라 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해 하루 종일 파도에 부딪혀 봤다.

녹초가 되었지만

서핑이라는 녀석과 앞으로 친해지기에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다음 주엔 친구가 데리러 와 또 해변에 찾아갔다.

아침부터 윤슬을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리다

때가 되면 패들링을 했고, 일어서고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오후엔 나른한 햇살을 이불로 비치타월 위에 누워 태닝을 했다.

앞, 뒤 골고루 태우다가 땀이 너무 나면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고 나왔다.

그러고 다시 태웠다.


나는 까맣게 탄 피부와 짠내가 섞인 땀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바라보던 바다는 속을 감추며 어두워지고 하늘은 붉게 물드는 한적한 시간.

그렇게 바다와 가까워졌다.

내가 찾던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물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나와 잘 맞는지 알게 되자

어릴 적 지겹게 하던 수영이 떠올랐다.

3년 동안 했지만 많이 어색해졌다 보니 다시 감각을 깨우고 싶어 수영장에 등록했다.

서툴렀지만 어느새 새벽 6시면 일어나 어깨를 돌리고 발차기를 하면서 잠을 깨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여름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즐긴 것을 간단하게 말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여름 동안 고달픈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면 과장이지만 저런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되돌아보는 나의 여름은 아직도 활활 타고 있다.


그런데 너무 좋았다 보니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다시는 그런 찬란함이 없으면 어떡하지?’

‘매번 그땐 좋았지.. 라며 아쉬워만 하게 되는 거 아닐까?’

요새 불쑥 이런 걱정들이 찾아오고 있다.


생각이 많은 나는 
소중한 순간들이 생겨나자
벌써 다음엔 이런 일이 없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한다.



그럴 때면, 다시 noriki의 앨범을 들었다.


누군가는 씨티팝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버블 시대의 무엇을 해도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던,

활개를 치고 다녔던 그 시절을 되뇌는 거라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듣고 있는가?

적어도 나는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시간이 담긴 그 노래를 들으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런 좋은 노래를 들으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더 사랑하고 만끽한다.

'예전의 좋은 것'을 토대로 '지금을 새롭고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의 다가올 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한다.

씨티팝을 듣는 것처럼

찬란한 나의 여름도 마찬가지로 여겨야 할 거다.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보다
그토록 좋은 시간을 토대로
'지금의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더욱 좋게 바라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빛나고 좋았던 순간을 과거에 가둬 그리워하기보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더 좋을 시간을 만들기 위해 언제든 꺼내 먹으려 한다.


그렇게 찬란함은 더 큰 찬란함을 낳을 거니까.
이번 가을도, 겨울도 그렇게 찬란한 순간을 낚기 위해 그냥 떠나 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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