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호흡법 중에 정뇌호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뇌를 정화하는 복식호흡인데요, 일정한 속도로 짧고 강하게 숨을 뱉어내길 반복하는 호흡 수련법입니다. 신체 체온을 높여 몸을 활성화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돼서 수련 전 후에 하길 권하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잘 안 합니다.
요가를 시작한 지 햇수로 8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수련보다는 재활이 목적인지라 수련의 깊이가 많이 부족해요. '전 퇴근하고,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공부를 봐준 뒤 부랴부랴 가느라 수련 전 여유를 갖고 호흡할 5분이 없어요.'라는 건 구구절절한 핑계입니다. 사실 그냥 귀찮은 거예요.
오늘은 아이들이 협조를 잘 해준 덕분에 5분의 시간을 벌었어요. 평소라면 그 시간에 짧게 동화책 한 권이라도 읽어주는데, 오늘은 그냥 뒷전으로 하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습니다. 수련실에 5분 일찍 앉아 매트를 깔고 이리저리 몸을 풀어봐요. 학기 시작도 전에 여러 일로 시달리며 수련을 게을리했더니 몸에 바로 티가 나네요. 온몸이 뻣뻣한 것이, 영 자세가 나오지 않아요. 목, 어깨, 등의 뭉친 부분을 풀어내려 오랜만에 정뇌호흡을 시도해 봅니다.
그런데 호흡이 되지 않네요. 코로 깊이 들이쉬고 배를 당겨 뱉어내야 하는데, 집중을 해도 호흡이 깊어지지가 않습니다. 단전이 아니라 폐의 절반도 못 채울 정도로 얕은 호흡 밖에 되질 않아요. 호흡이 깊어지지 않으면 뱉어낼 숨이 없으니 더 이상 호흡을 할 수가 없지요.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눈을 감고 호흡이 되지 않는 백만 스물한 가지 이유를 찾아봅니다.
왜 호흡이 안되지?
잘 못 앉았나?
자세를 고쳐볼까?
너무 오랜만에 했나?
현이 도시락반찬 고민하다 집중력이 흩어졌나?
낮에 ○○씨는 나한테 왜 그런 거지?
아, 또 열받네.
일도 안되고, 수련도 안되고... 되는 게 없냐.
우 씨...!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게 있더군요. 뒷목부터 어깨, 등, 허리, 골반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요. 몸 뒷면 전체가 돌덩이처럼 굳어있으니 흉곽이 넓어질 수가 있나요. 호흡이 안된 건 다 긴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엔 깊고 시원하게 숨을 들이마신 적이 없어요. 얕고 잦은 호흡으로 종종거리며 지내느라 깊이 숨 쉬는 법도 잊은 모양입니다. 눈을 뜨니 왼손의 손목시계가 보입니다. 눈 뜨는 순간 차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하다, 잠들기 직전에야 풀어놓아 하루 중 가장 오래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이에요. 내 몸 같은 시계인데, 보고 있자니 괜히 허탈하네요.
차가운 밤공기를 부러 크게 들이켜 봅니다. 시원하게 들이켜고 입 밖으로 크게 뱉어내려 하는데, 생각만큼 후련하지가 않아요. 여전히 숨이 얕습니다. 잔뜩 화가 나 뻣뻣해진 뒷목을 매만져 봅니다. 알게 모르게 계속 부여잡고 있는 거겠죠. 지나간 것을 지나가게 두지 않고, 흐를 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건 바로 저니까요.
억지로 숨을 크게 뱉어내 봅니다. 뱉어내는 숨과 함께 부여잡고 있는 것들도 억지로 밀어내 봅니다. 계속하다 보면 홀연히 가벼워질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내일은 부디, 오늘보다 숨을 깊이 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