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진 Apr 06. 2022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2일차 기록

역시나 어젯밤에도 일찍 잠이 들었다. 자도 자도 계속 자게 만드는 이 바이러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코로나 후유증 중 하나가 피로감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피곤하다. 너무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나의 면역이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나의 육체는 고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육체인데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말하게 되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내 것인데도 타자화하기 쉬운 육신이라는 존재. 나는 내 육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육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꽤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고, 몇 개는 엎어지기도 했다. 작업실 이사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을뿐더러 태어나 처음으로 전세를 얻으며 대출이라는 것도 받았다. 대출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복잡했으며 그 와중에 세금 문제까지 터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었다. 그 와중에 짬짬이 데이트도 했는데, 오랜만에 호감을 갖고 만나고 싶었지만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쪽 어머니가 반대하는 사건이 있었다. 겨우 두 살 많은 게 뭐 얼마나 대수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여성은 아이 낳는 기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룬 어느 것도 능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능력이라는 건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지만, 여성이라서, 생리적인 이유로 평가 절하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눈을 비비고 달력을 다시 바라본다. 2022년 분명 21세기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 변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특히 나의 서른다섯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 나이가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잘못된 인연을 평생 가져갈 뻔했다. 조상신이 도왔다는 말을 쓰는 건 딱 이런 시점이 아닌가 싶다. 조상신을 믿지는 않지만, 온 우주가 모든 힘을 동원해 나를 도왔다는 생각은 든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몸이 많이 아팠다. 결국 코로나 확진 판정까지 받으니 이제서야 정신이 든다.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달렸나.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무리해서 작업을 받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그를 앉혀다 여러 미사여구를 가져다 기나긴 설교를 하고, 내가 왜 그랬나 싶다. 자가격리 2일차를 보내며 주문해놓은 책을 여러 권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각자 글쟁이들이 표현한 자기만의 세계를 샅샅이 읽으며 나도 그냥 나의 세계 안에서 안전하게 누구의 인정도 바랄 것 없이 살면 그뿐 아닌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아무것도 호락호락한 게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뭐라도 쉬웠으면 모든 걸 우습게 봤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바이러스도, 사람도, 세상도 그 무엇도 우습지가 않다. 그 무엇도 우습지가 않아서 스스로를 단단히 조이고, 필요할 때는 더 튼튼히 무장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 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1일차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