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선배들이 말하길, 확진 통보받고 3일 정도 지나면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아직 감기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후각도 돌아왔고, 잔기침도 거의 사그라들었다. 아직 피로감은 덕지덕지 붙어있지만, 이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좋아질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커피 향을 맡았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매일의 기록을 빼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4일차는 기록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바람에 급히 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는데, 이 와중에 일까지 하는 걸 보면 어쨌든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엄마가 반찬과 국, 밥까지 바리바리 챙겨서 아빠의 손에 들려 보내주는데, 매일 밥 먹고, 약 먹고, 자고를 반복하니 얼굴에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살찌고 싶지 않지만 나아지기 위해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산책을 하고 싶다. 월요일이 되면 가벼운 산책으로 격리의 끝을 알릴 거다. 격리 기간을 겪으며 환자의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길고 지루한 병마와의 싸움이야말로 인간이 겪는 가장 힘든 고난이다. 임세원 교수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육신의 고통이라고 기록한 바 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요즘은 자기 전에 매일 기도를 '드린다'. 거의 혼자 주절거리는 수준이라 기도를 한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래도 '드리기'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나를 보살펴준 신에 대한 감사가 주된 내용이다. 특히 어제는 격리 기간을 돌이켜보며 진심으로 신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뭉클할 정도로 말이다. 늘 잘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쉬어본 게 얼마 만인가 싶다. 일단 몸이 아프니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어둠의 영역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회복만이 인생에 놓인 가장 큰 과제이자 기도의 내용이다. 오직 하루치의 기도를 하고, 하루치를 살아내는 격리 기간 동안에 신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느꼈고, 참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매일의 삶이 이런 모양이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이 또한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지도 않을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떠는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니 응당 그럴 것이다. 그래도 소박한 깨달음을 매일 기록하는 이 감각이 몸과 마음에 제대로 새겨진다면, 불안 속에서도 갱신할 거다. 하루치의 삶, 하루치의 걱정. 단 하루를 제대로 살아가겠다는 그 결심을 갱신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