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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Jun 22. 2022

젊은 시절을 박제하는 행위

예전 인터뷰 혹은 그냥 인스타그램에 쓴 짧은 글만 봐도, 아 진짜 왜 저래. 싶다. 그래서 활자로 남기는 행위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기 어린 글에 대한 수치심이란, 글 쓰는 사람이라면 평생 지고 가야 할 배낭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 배낭의 무게는 무겁다.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무게감을 안고 글쓰기를 대하기 때문에 속도가 더디다. 늘 빠르게 해치우는 습관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 무게가 삶의 중심의 균형을 맞추는 저울추로 작용한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에 살던 사람들은 그림으로 혹은 조각으로라도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이야기로, 혹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멜로디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존재의 흔적을 남겼다.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저항 같은 걸까. 사연 없는 무덤은 단 한 개도 없고, 무연고자일수록 되려 더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최선을 다한 '삶'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면 그저 인간은 참으로 인간이라서 매력 있다.



미술관에 다녀왔다. 1층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의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협찬에 걸맞게 아주 화려하고, 가히 그 웅장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2층에서는 대한민국 미술사에 큰 영향을 준 유명 작가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으로 도심의 가장 비싼 자리에 위치한 미술관의 한 룸은 늘 그녀의 몫으로 남아있다. 죽음으로 인해 육체는 존재하지 않으나 그녀의 영혼이 늘 그 자리에 머문다 생각하니 조금은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3층에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다양한 작가들이 각양각색의 재료와 방법으로 온갖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지만, 모두 독특했다. 아름다웠다. 그들의 이름이 벽 면에 가득 쓰여있었다.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2층의 갤러리 한 켠을 차지할 만한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묵직한 이름의 무게를 가진 유령은 가끔 살아 숨 쉬는 사람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법이다. 1층을 차지하기란 더욱 힘들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2층의 이름만큼 영향력을 갖는다는 건, 모두가 꿈꾸지만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아주 드문 행운이다.



인간은 누구나 발견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어린이는 자기의 세계 안에서 슈퍼스타다. 하지만 그 수많은 슈퍼스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과거 잘 나갔던 추억을 회상하며 함께 늙어간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세계 안에서 슈퍼스타들은 이제 한물 간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요즘 사람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분명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딘가로부터 한참 벗어난 기분을 매일같이 느끼며, 3층의 미술관, 전시를 다 봤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그런 이름 중 하나로 어딘가에 묻혀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젊은 시절을 박제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더욱 몰두한다. 내 안에 있는 슈퍼스타에게 과거의 영광을 돌려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여전히 삶의 주인공이라는 그 작은 사실 하나를 애타게 붙잡아 어린 손에 쥐여준다. 애처롭고 안쓰럽게 열심히. 젊은 시절을 박제한다는 말을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준 사람을 떠올린다. 이런 문장을 입을 벌려 말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 행위를 이해하는 사람이겠지. 우리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하나의 인간으로, 하나의 사회로, 하나의 유기체로 어쨌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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