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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Apr 11. 2023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도대체 그녀는 왜 이토록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여자들은 항상 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않았고, 그에게서 자신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사람, 삶 속에서 그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사랑했다. 그중 단 한 여인도 그와 있어 행복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며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졌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뭐라 불러도 좋지만, 그건 절대 사랑은 아니었다.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중 



대부분의 시간 아가페의 사랑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두 사람 간의 사랑, 외로운 사람이 다른 외로운 사람을 만나 삶을 나누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 나아가 욕망이 존재하는 관계.  그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몇 개월간 누군가를 갈망하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한 사람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서 그를 옆에 앉혀다 놓고 하루 종일 수다를 떤다. 그와 나는 그렇게  밤이고 낮이고 대화를 나눴다. 그와의 대화는 풍성하고 유쾌했으며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를 찬물에 담갔다가 금세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고, 뿌리째 뽑았다가 다시 양지바른 흙에 고이  놓아주기도 했다. 모든 게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매일 아침 나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의 존재는  말 그대로 '자극'이었다.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늘 남자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남자 친구들을 만나면 반대로 여자 이야기를 하니, 어떤 성별이든 다른 성별에 대한 갈망이 있는 건 당연한 일 같지만(같은 성에 대한 열망과 사랑 또한 당연합니다), 어쨌든 여자 친구들과 하는 로맨스에 대한 대화는 늘 빠지지 않는 주제다.  우리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물론 키를 포함한 외모, 성격, 배경과 능력이 좋아야 나를 사랑할 자격이 주어지겠지만, 어쨌든 나를 구원할 사랑,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남자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오늘의 글을 시작할 때, 안톤 체호프의 글을 빌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나오는 문장이다. 남자 주인공 구로프가 과거의 연인을 생각하며 한 말이다. 그는 아내에 대해서나 그전에 만났던 다른 연인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고 회상한다. 동시에 반면, 여자들은 늘 상상이 만들어낸 사람, 삶 속에서 그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녀들이 사랑한 남자는 여자들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남자라고 나는 해석했다.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이 소설 이야기를 잠시 곁들이자면, 사랑에 대해 꽤나 피상적이었던 구로프는 안나 세르게예브나를 만나 진짜 사랑에 빠지고, 과거의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기혼자인 두 사람이 시작하게 될 관계는 쉬이 불륜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미묘하고 강렬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출간 당시에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다시, 구로프가 과거 여자들에 대해 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여자들은 늘 상상이 만들어 낸 사람을 사랑했다.' 나는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상상 속에서 그를 재창조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과 사랑에 빠지고, 대화를 나누고, 이내 마음을 나눈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로맨스였다.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은 내가 나를 지지하는 일이라 그 마음이 무엇이든지 간에 참 좋은 거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긍정의 말을 듣는  건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어쨌든 나를 구원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것이지만, 절대 나쁜 게 아니다. 그런 상대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도 나의 욕망에 기인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조차 나쁜 건 아니다. 욕망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상상 속  연인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내 욕망의 대상이었고, 올라타고 싶은 사다리였으며 금지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극이었다. 그 자극에 매몰되어 참으로 정신없이 살았다. 분명히 좋았지만 끝내 영원할 수는 없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작별의 인사다. 평범한 하나의 인생에서 길어낸 비극적인 이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늘 반짝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검지로 하나하나 매만지면서, 그 부드러운 촉각에 황홀함을 느끼며 상상 속 연인인 나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안녕. 그리고 단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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