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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초 Jul 23. 2021

생일날 반차 내고 면접 보기

멘붕의 생일

일어나서 어제 미리 사놓은 생일 케이크 한 조각을 얼른 해치우고 인턴 출근을 위해 지옥철에 올라탔다.

평소와 같이 마케팅 회의를 참석하고 일을 한다. 다만, 오늘은 정오 퇴근이다. 드림 하우스 면접을 보기 위해 반차를 냈다. 반차를 냈는데 그리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또, 정신머리는 어디에 두고 다니는지 오후 3시에 비대면 면접이 있는데, 노트북 배터리는 30%, 충전기는 없다.


휴, 생일에 면접이라니... '면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부담되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생일 기분을 좀 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동네 서촌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예정된 면접 시간이 다가온다. 온라인 줌 링크가 메시지로 날아온다. 조용하고 한적해 보여서 들어온 한옥 카페에서 갑자기 음악이 커지면서 와이파이 연결도 계속해서 끊긴다. '왜 하필, 지금 이러냐고...!!!'


일단, 온라인 면접장에 접속은 했는데 "민근 님,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이 부드럽고도 난처한 말을 세 번도 더 듣고는 노트북 채로 들고 여러 번 장소를 이동했다. 급기야 브레이크 타임이었던 조용한 2층 레스토랑에 잠깐 양해를 구하고 또다시 자리를 잡았다. 여름의 끝 더위는 9월까지 남아있었다. 이미 내 등은 땀으로 흥건했고 나는 면접관님들과 면접 동기에게 '죄송합니다'만 연달아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충전기 없는 위태위태한 노트북의 배터리 11%...... 내 심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노트북이 방전되기 전에 면접이 무사히 끝나기만 바라는 내 마음과 달리, 면접관님의 질문은 끊임없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한국에서 최소 6개월 동안 입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1차 서류 지원서 바탕의 질문과 드림하우스 입주 시, 하고 싶은 콜라보 프로젝트, 룸메이트와의 충돌 상황에 대한 질문까지... 반면, 면접 동기는 여유가 넘쳤다. 면접 내내 훈훈한 미소를 잃지 않는 프로였다. 내 또래 같아 보였는데 제주도에 있는 티룸 브랜딩을 하고 있다는 이력을 말하는 것이다. 내리쬐는 햇빛에 화장이 다 녹아 얼굴이 벌게져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20대 초반부터 그런 멋진 일을 하고 있다니 딱 봐도 난 똑 떨어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황은 이 모양이었지만 순간, 내가 이 면접을 금쪽같은 반차를 내고 나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래도 밀어붙여보자(?)' 하는 심정으로 곧 밑도 끝도 없는 나의 열정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무엇을 정확히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 간에 내가 드림 하우스 입주자로 적합한 이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연결 지어 얘기하면서 말이다. 다 같이 웃기도 하고 편한 분위기였지만 초반에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이고 경험 많은 면접 동기와 비교되면서 '망했구나'만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다. 면접은 배터리 충전 6%에서 가까스로 끝났다. 큰 숙제를 마친 느낌이었지만 뭔가 찝찝했다. 힘없이 노트북을 닫으니 기분 좋은 바람이 내 상기된 얼굴에 일랑였다. 


면접 후, 서촌에서의 나는 혼자였다. 처음으로 혼자 보내보는 생일. 면접도 잘 못 봐서 기분이 꿀꿀한데 혼자서도 잘 지내보려 한다. 면접을 끝낸 카페를 나와 정독 도서관을 지나 경복궁 길, 삼청동, 북촌, 다시 계동, 안국역까지 종로구 한 바퀴를 하염없이 걸었다. 마음이 계속 공허하고 뭔가 채워지지 않는 날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동네를 계속해서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9월 15일,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좋은 날씨, 공간,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오늘의 풍경은 어떤지 오롯이 느껴본다. 머리는 복잡했다. 

'다른 드림 하우스 지원자들도 면접 동기처럼 모두 스펙과 경험이 다양하겠지?' 반차도 날리고 면접도 망하고 이런 생각은 쓸데없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공유 공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집에 매우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한 없이 가라 앉는 오후였다. 어느 나라 속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두운 시절에 남이 내 곁을 지켜줄거라 생각하지 말라. 해가 지면 심지어 내 그림자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라는 말까지 떠올랐다. 결국 내 싸움은 자기 힘으로... 그래, 안됨 말고!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몇 주 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드림하우스 2기 최종 합격되셔서 전화드렸어요."

'!!!!!!!!! 네?!!!!!?!!!!!'

말도 안 돼, 아....ㅇ ㅏ..읭...? 나 진짜 드디어 독립하는 거야? 쉐어하우스에서?

생일에 봤던 망한 면접 때문에 썼던 반차를 쓴 게 하나도 아깝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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