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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Jul 28. 2023

A급으로 진입한 좀비물 : 월드워Z

영화로운 위로 



  한국에서 좀비물은 최근까지 마이너 장르였다. 그러나, 좀비영화는 철저히 상업영화를 표방한 블록버스터 <월드워Z>(2013년, 누적관객수 약 500만) 부터 <부산행>(2016년, 누적관객수 약 1100만) 까지의 연이은 성공으로 좀비물은 A급이 될 수 있는 장르로 정착했다. 


<부산행>의 성공 전에는 <월드워Z>의 성공이 있었기에 좀 더 수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좀비영화의 성공 효시가 되었고 세계적인 흥행을 한 ‘월드워Z'를 다시 조명해보고자 한다. 


  ’월드워Z'는 B급영화들에서 통용되던 좀비물이라는 소재를 대중적인 A급 블록버스터로 끌고 와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또한 <스타워즈> 등의 몇 십년 전 영화에서 통용되던 영웅신화의 구조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보글러가 주장했던 이 영웅신화 구조는 2010년대에도, 그 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확신을 던져준다. 우리의 DNA 속에는 이러한 신화적 스토리텔링에 특별히 반응하는 코드가 심어져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영웅신화의 구조 속에서 ‘월드워Z’의 구조를 분석해본 후, 좀비물의 대중성에 대해 논해볼 것이다.      




1. 답습되는 영웅신화의 구조   

   

  <월드워Z>는 오락영화로서 탄탄한 구조를 가진, 잘 만든 영화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로 참여한 이 영화의 원작 <세계대전Z>는 여러 인물들의 각각의 경험담을 다루는 옴니버스식 소설이다. 이를 영화라는 매체로 바꾸면서 많은 부분이 생략될 수 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시점에서 얘기를 사방팔방으로 전개할 수 있는 소설에 비해, 영화는 시점과 서사가 한두개로 집중될수록 관객을 몰입하게 할 수 있다. 옴니버스형 영화도 많이 있긴 하지만, 실험적인 독립영화 등에서 많이 쓰이고, 대중적 상업영화에선 흥행하기 힘든 장르로 알려져 있다. 특히 블록버스터에서는 단순한 스토리구조가 먹히니까 말이다. <월드워Z>에서는 주인공 ‘제리’를 철저히 전면에 내세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일대기로 각색해냈다. 전형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 구조이지만, 이 익숙한 영웅신화구조는 현대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관객들은 이를 보고 통쾌함과 희열, 힘겨운 현실을 타파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제시한 ‘영웅의 여정 12단계’에 <월드워Z> 는 거의 완벽히 부합한다. 익숙한 영웅신화 구조를 정확히 따라가며 대중에게 친숙한 좀비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12단계 중 자주 생략이 되곤 하는 9, 10단계(보상, 귀환의 길)를 빼고 대입해보았다.      


(1) 일상 세계 

일상적 세계를 설정한 후 여행을 시작. ‘제리’와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준 후, 갑자기 도로에서 좀비떼가 나타나면서 일상의 세계가 무너져버린다. 


(2) 모험에의 소명 

어느 사회에 불안정한 상황이 야기되고, 영웅은 자발적으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 의무적으로 모험에의 소명을 떠맡게 된다. 제리는 전 UN조사관으로, 친구의 도움으로 안전한 함선을 타게 되지만, 박사를 도와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을 것을 사령관에게 명령받는다.  


(3) 소명에의 거부 

처음에는 영웅은 주저하거나, 적어도 잠시 동안 소명을 거부한다. 제리 또한 명령을 받자마자 싫다고 말한다. 자기는 가족들이 소중하므로 목숨을 걸 수 없다고. 사령관은 제리의 가족들을 함선에서 내리게 해서 위험으로 내몰 수 있다고 은근히 협박한다. 제리는 어쩔 수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모험을 떠난다. 


(4) 정신적 스승과의 만남 

정신적 스승과 만나 여행을 시작하는 데 있어야할 필수품이나 지식, 용기 등을 얻는다. 제리에겐 정신적 스승은 없지만, 가는 곳마다 군인들의 서포트를 받고,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한 정보와 바이러스에 대한 실마리를 발로 뛰며 수집한다.  


(5) 첫 관문의 통과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 비행기의 이륙 부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월드워Z>에서도 이 단계 즈음에 비행기에서의 액션씬이 나온다. 한국 평택기지 - 이스라엘 - 비행기 로 장소를 옮겨가며 하나씩 관문을 통과해나간다. 


(6) 시험협력자적대자 

주인공은 특별한 세계에 들어가고, 다음 단계인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 접근하기 위한 힘과 정보 축적. 제리는 이스라엘 여군과 함께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고, 목적지였던 의학연구소 WHO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마지막 정보를 얻고, 자신의 생각의 결론인 “좀비는 본능적으로 병자는 물지않고 피해간다. 그러므로 정상인을 병자처럼 ‘위장’하면 좀비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를 실험해보고자 한다.  


(7)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의 접근 

영웅은 그곳에서 아주 경이롭고 무서운 일과 대면한다.

제리는 백신을 가지러 좀비 80명이 있는 동굴(격리된 병원 B동 건물)로 걸어들어간다. 


(8) 시련 

최대의 도전과 함께 이제까지 겪지 못한 가장 무시무시한 적과 마주함. 제리는 좀비떼를 피해 백신들이 들어있는 보관실로 들어간다. 문밖에는 좀비가 지키고 서있다. 잘못된 약을 투약해서 목숨을 잃느냐 좀비에게 목숨을 잃느냐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여기서 ‘가장 무시무시한 적’은 좀비보다도, 자기목숨을 걸어야하는 도박이 아닐까.  


(11) 부활 

영웅은 최후의 희생 또는 생사의 더 깊은 차원의 신비로운 체험을 함으로써 완전히 정화될 수 있다. 약을 투약했지만 제리는 죽지 않고 살았다. 병이 걸린 상태로 위장한 제리는 좀비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나가는데 관객들은 여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12) 영약을 가지고 귀환 

영웅은 획득한 영약을 가지고 귀환함. 그 영약은 함께 나눌 수 있고, 폐허화된 땅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제리는 약을 갖고 가족들에게 귀환하고, 약은 백신으로 개발되어 세계에 보급되며 인류가 버틸 수 있는 희망이 되어준다.                     





2. 좀비물과 재난물 사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불렸던 ‘이스라엘씬’에서는 좀비에 대항해 벽을 쌓은 장면이 나온다. 그 거대한 벽은 이스라엘이 지은 가자지구를 연상케 한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에 대항해 벽을 쌓은 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세기말적인 재난상황을 그린 콘텐츠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인간은 ‘지구멸망’에 대한 로망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고 한다. <월드워Z>는 좀비물보다 재난물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투모로우>, <해운대> 등에서 나왔던 해일, 홍수, 지각변동 등의 자연재해가 ‘좀비’로 대체되었을 뿐. 좀비는 빠르게 떼로 몰려다니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해일 같은 존재처럼 그려진다. 기존 좀비물에서 볼 수 있던 좀비만의 특성은 이 영화에서 희석된다. 사람을 물어뜯어 잡아먹고 하는 좀비라는 개체 각각이 강조되기보다, 여기선 한낱 ‘좀비떼’라는 집단으로 부각될 뿐이다. 좀비 각각의 분장을 보면 거의 징그럽다고 못 느낄만큼 사람과 흡사한 모양새로 영상에 출현한다. 피를 철철 흘리지도 않고, 혈관과 눈동자가 튀어나와있고 피가 묻어있는 수준이다. 고어씬이 없어서 좀비물 마니아들에겐 혹평을 받기도 했다지만, 대중들을 고려한 무난하고 똑똑한 선택이었다. <부산행>도 이런 공식을 따랐기에 세대를 뛰어넘어 여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연출 또한 돋보였다. 좀비가 직접 사람을 무는 ‘고어’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걸 피하면서도 실감나고 무섭게 표현해냈다. 영화 전체적으로 숫자를 세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좀비가 사람을 물면 딱 12초 후에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는 계속 숫자를 세며 좀비를 처단하거나, 좀비에게 물린 사람의 물린 부분을 잘라내어 좀비가 되는 것을 막는다. 이 숫자 세는 장면들은 영화의 속도감을 높여주고 긴박감을 제공한다. 거의 모든 부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데, 중간중간 쉬는 템포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 완급조절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뮤즈의 일렉트릭 음악을 사용한 것도 적절했다.     





3. 좀비의 대중성  


  좀비는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에서 시작된 말이다. 미국영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28일 후>, <새벽의 저주> 같은 기존 좀비물이 마니아층이 즐기던 18세 이상 B급 영화가 대부분이었던 데 비해 <월드워Z>는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A급 영화가 되었다. 갈수록 좀비물이 눈높이를 낮추며 대중적인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좀비가 사랑을 한다는 설정의 <웜 바디스>처럼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좀비는 오늘날 OSMU, 원소스 멀티유즈의 콘텐츠 영역으로 새로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인기 콘텐츠는 ‘좀비지도’까지 이끌어 냈다. 인터넷을 통해 좀비라는 단어를 얼마나 검색하는지 그래픽화한 것이다.  영국옥스퍼드대학의 인터넷 연구소에서 제작했는데, ‘좀비가 세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실제로 좀비가 발생했을 때 이 지도가 유용히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분포도가 높은 지역은 원산지인 미국과 유럽, 아시아 중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높다. 여기서는 좀비의 인기는 전세계적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잘 사는 지역일수록 집중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한국 웹툰에서는 강풀의 ‘당신의모든순간’, 주동근의 ‘지금우리학교는’, 이은재의 ‘1호선’ 등 많은 좀비를 다룬 웹툰이 등장했다. 특히 강풀의 웹툰은 ‘좀비도 한때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었고, 우리의 친구고 가족이었다’라는 휴머니즘적 좀비물을 선보였다. ‘1호선’은 좀비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는 ‘면역체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고, 사이비 미신에 빠지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잘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부산행>에 뒤이어 영화화될 웹툰으로 기대해 본다. 



  좀비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원인은 게임하는 것 같은 긴박감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좀비는 대부분 영화에서 스피디한 움직임으로 그려지는데, 이 스피디함이 게임하는 듯한 리듬감을 준다. <월드워Z>에서 제리는 게임 속 주인공이고, 좀비는 그가 물리치는 대상이 되며, 관객들은 이에 이입한다. 

  또한,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부분도 있다. 완전히 괴물도 아니고 완전히 인간도 아닌,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정체성 자체가 그의 매력이다. 두 경계에 걸쳐있는 이 ‘생명체’는 괴수보다 현실감이 있으면서 동시에 이질적이다. 설정들이 나올 대로 나온 좀비영화 장르에 또 어떤 새로움이 추가될지, <월드워Z>의 속편과 <부산행>을 이을 한국형 좀비물은 어떤 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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