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과 양귀비
차가운 겨울만 존재할 것 같던 프랑스에도 얼마 전 봄이 찾아왔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던 곳에 하나 둘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그렇게 마음이 설렐 수가 없더라고요.
드디어 나도 유럽의 봄을 보는구나,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꽃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쨍한 색감의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이 마치 정물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보던 봄꽃과는 또 다른 종류라서, 같이 걷던 언니와 함께 무슨 꽃일까를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그러다 문득 꽃들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저마다 쨍한 색깔을 가지고 '나를 봐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화려한 꽃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저런가하고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꽃들은 양귀비같이 색이 진하고 화려한 꽃보다 들꽃이나 안개꽃같이 주변 꽃들에 비해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는 꽃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그러고 나니 이게 나라마다 선호하는 사람의 유형과도 연결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은 양귀비처럼 개성이 있고 튀는 사람들을 비교적 선호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들꽃처럼 공동체와 잘 융화되는 사람을 선호하잖아요.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다보면 가끔 친구들이 수업 중에 뜬금없는 이야기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소위 TMI라고 하죠. 교수님이 수업을 하다가 '프랑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라고 질문을 하면 '프랑스는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탈리아는~ 제 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물어보지도 않은 답을 하는 식입니다.
이걸 한국 수업에서 했다면 아마 그 친구는 그만하라는 눈치를 주변에서도, 교수님에게서도 받지 않을까요.
질문에는 필요한 답만 하고, 이외의 시간에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한국식 수업에 익숙해진 저는 이런 상황이 매우 불편했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교수님의 태도였어요. 그런 'TMI'를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토론 주제가 생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친구와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거에요.
들꽃이 되는 것에 익숙해진 저는 양귀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죠.
새삼 제가 한국의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답니다.
-2023.05 어느날 교환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