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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세라믹 Oct 15. 2024

19번 언급된 아픔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백일 전의 손녀처럼 저도 아직은 몸짓이 서툴고 미숙합니다.  

처음에는 브런치에 서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글을 쓰는 작가님의 시린 사연도 있고, 글에 모두 담지 못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아픔을 큰소리로 말하지 않고 글로 쓸 때는 정제된 감성으로 표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글로 표현하시면 격한 표현이나 속된 표현은 글로 남기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이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합니다. 담담함에도 한껏 그렇게 못하시는 것을 볼 때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픔은 그 덩치에 관계없이 한 번에 덜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엉킨 마음을 풀어야 하고 우울한 표현이 분명한 아픔이나 슬픔은 되새김도 해야 합니다. 덜어 내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한 표현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상처를 회복하거나 아픔에서 조금 멀어지거나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 언어로 슬픔이 가려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얼마나 힘든 일이 될까 싶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삼켜야 하는 것은 누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고 있어서아닐까 합니다.

꺼내 놓으신 아픔이 위로받고 치유되기를 바라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은 공간에서 위로하거나 위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픔을 가린 모습이나 치료의 과정을 보여 주셔도 아픔은 온전히 내가 느끼는 고통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살펴보실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간직한 아픔이 한 번에  봇물처럼 흘러가지 않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픔을 간직했던 공간의 아픔이 한 번에 훅하고 없어지면 허전한 빈자리가 다른 슬픔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 곳에 꺼내놓으시면 후련하실까요? 그렇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생채기는 흔적도 남고 나쁜 기억도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내성도 키워가면서 오래도록 힘들지 않게 보여 주십시오. 슬픔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셔도 우리가 기억하는 낯설지 않은 오래된 이웃처럼 말입니다.

작가님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 뻔하지만 말입니다. 


반면에 솔직한 분들도 있습니다 넘치는 자신감이 뚝뚝 묻어납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특징이 분명해서 부드러움으로 쓰거나 넘치는 기운으로 쓰거나 많은 생각 끝에 쓰시는 것 같아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을 위로하거나, 나를 위로하거나, 무엇을 돋보이게 하거나, 때로는 슬픔을 위로하거나 모든 것이 원인과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저는 스스로 아픔을 마주하시는 분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용기 내서 아픔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이시거나, 위로받으셨거나, 실망하셨거나, 덧칠할 수 없는 수채화가 유화가 되어 버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글을 쓰셔서 아픔이 한 번에 사라지거나 위로받거나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넓게 보면 자기기만입니다. 위로받는다 하여도 천천히 가시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위로받기를 부탁드립니다. 

차라리 내가 나를 위로하고 살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아픈 마음을 되돌아보고 글을 쓰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동판에 꾹꾹 눌러 새겨진 아픔이 글 한편으로 위로받고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픔은 저마다의 크기 안에 있습니다 저는 제 크기의 불편함 속에 살고 있어서 작가님들의 아픔을 가늠하지 못하고 주제넘은 말씀을 드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제넘은 말 중에 간과한 것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다만 슬픔을 덜어내는 내성을 키우셔서 오직 나만이 모든 것의 주체가 되고, 위로가 되고, 꼭짓점인 것을 과감하고 찬찬한 몸짓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것이 나의 새로운 다짐과 회복의 힘이 되고, 고통과 슬픔이 단절될 때까지 오직 감동적인 글쟁이로 뵙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이웃하고 지내는 곳에서 내남없이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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