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1.2.3
결론 1.
왜 쓰려고 하는데? 덜컥 겁부터 났다.
그렇게 단호하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묻고 답하는 형식이 익숙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물어보지 않으면 질문에 적당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했다. 또 걱정해야 하고 마음을 써야 하고 잘될 거야라고 위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단호한 질문으로 답을 피해 가고 싶었다. 내가 느껴야 할 새로운 좌절을 마주 하기 싫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기대와 동시에 한계치가 분명한 사람에게는 덜컥 겁부터 느끼게 하는 잔인한 고문이었다.
글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많이 읽고, 쓰고, 상량하기를 권고했지만 이들의 권고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졌다.
결론 2.
이번생의 마지막 헛짓거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꿈이 없었으면 당장 나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내가 글쓰기를 첫사랑처럼 간직해 온 것은 오랜 꿈이야 너도 잘 알잖아
오래된 꿈이 있어 헛짓거리라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어.
쓰겠다고 했지만 놀이 공원의 미로에서 쉽게 좌절하거나 기차의 풍경처럼 쉽게 고개를 돌리거나 하겠지
쓰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이니 적당한 말로 멋지게 꾸며서 그만둘 거야
갑자기 질문의 강도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은 분명하니 위로와 격려보다는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말투가 많아질 거야
그래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위로할 것이며 아픔은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보기보다는 높은 산이라고, 산중턱의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자위하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겠지
서로 다툼이 빈번해질 것이고 이길 수 없는 입장과 질 수 없는 입장의 딜레마에 빠질 거야
자신과의 싸움은 골이 깊어갈 뿐 아무것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한 번 생채기만 남길 거야❞
나는 처음부터 무엇 때문에 쓰려는지 단호하게 묻지도 못하고 망설임과 겁먹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결론 3.
겁먹은 신중함을 버려야 했다. 쓰겠다고 생각하고 걸으면 산길에 흔적을 남기고 걸어가는 신중한 염려가 될 것 같았다. 쓰겠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밑줄을 남기는 것도 상량하기를 권고하는 길과 만날 것 같았다.
새로운 단어는 연결된 어휘력이 될 것이고 생각은 봉긋한 언덕을 오르내리는 기대감을 남기고 그 너머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쓰는 이를 상상해 보고 쓰는 이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했다.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손가락의 감촉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부드러운 느낌과 긴장감이 저릿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충분한 감촉으로 남을 것 같았다.
시작은 기대감보다 늘 무거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망설임 없이 삶을 조금 더 무겁게 하기로 결정했다.
확률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새롭게 시작했던 것 중에 하나쯤은 고생 끝에 마침표를 찍은 경험을 생각하면서 겁도 없이 마지막 의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쓰고 싶니? 그러면 써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