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니?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퇴근일 뿐 더하기 빼기도 없었던 인생은 불안하거나 허허롭지도 않았고 모든 인생이 같은 인생인 줄 알았다.
동사를 부연하는 부사를 앞에 놓지 않아도 인생은 스스로 움직이는 동사였으니까 부연설명조차 필요 없었다
테트리스처럼 차면 해결됐고 빠진 이처럼 가끔 채우지 못한 한 줄은 소리 없이 다음줄로 밀려갔다.
의미 없는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고 지나가고 내려가고 있을 뿐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거나 고통 없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조금 나누어 생각해 보면
인생의 삼분의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제 멋대로 살았으니
결과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행복했겠지?
삼분의 일은 걱정하며 살았어
부모님과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서 걱정하며 살았어 우리의 인생이 행복하고 걱정하고 무심하고 대부분 이렇게 채워지잖아?
남은 삼분의 일은 힘들고 많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살 수 있어? 하겠지만, 밥 먹고, 술 마시고, 버스 타고, 후회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서 마음 없이 앉아 있거나 비 오면 나가기 싫어서 아무것도 안 했어.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해 봐 그때만 해도 너에게 시간은 충분했잖아? 아니 충분한 것처럼 느꼈을 거야.
시간을 그렇게 보내도 같은 모습으로 여기저기 있었잖아 오직 나에게만 충분한 것처럼.
물레 앞에 앉아서 손가락 마디를 툭툭 불거지게 만들고, 장석과 석회석의 유약이 눈에 들어올 때는 백토의 검은색이 온몸에 화장토처럼 범벅을 하고 있어도 밥은 맛있었어
그대로 길을 걸어도 얼굴에는 백토가 묻어 있어도 우리는 도자기를 만들다 밥을 먹으로 온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가슴을 펴고 행색은 보란 듯이 훌륭했잖아?
밤을 새워 가마를 바라보고 삼백도의 가마문을 열고 싶은 충동은 순진한 즐거움이었고.
가마 안에서 기물 터지는 소리와 터진 기물이 엉겨 붙은 항아리는 그래도 아름다웠는데 그때는 행복했을까?
다관의 물대가 모두 돌아가 버린 것은 힘을 주는 태토의 결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꼬여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물대를 잘못 붙여서 그랬잖아.
고생한 보람도 없이 가마의 절반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다관을 마주할 때는 아무 말도 못 했어,
흙의 중심을 잡아 올리고 돌아가는 물레가 움직임을 멈춘 것처럼 내 앞에 있을 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는데.
젠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블록은 탄탄해 보였고 빼낸 젠가는 위로 올려놓고 보면 같은 형태로 든든했잖아
우리가 착각 속에 살았던 것처럼 중간에 빠지는 젠가의 블록이 흔들릴 때까지 우리는 알지 못하잖아
흔들리는 젠가 블록이 불안하다고 다시 뺀 곳에 끼워 넣을까?
그럴 수 없잖아 그런 것은 너도 알잖아?
젠가 게임은 결국 블록이 무너져야 끝나는 것이고 게임의 마지막에 숨을 멈추고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생을 하나쯤 걸고 하는 게임은 너를 원하지 않는 곳에 집어넣거나 그곳에서 빼주거나 했잖아
이런 인생놀음이 재미있었니?
저하고 싶은 일도 하고 저 놀고 싶을 때 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지쳐있거나 집으로 돌아와 생각 없이 잠이 들어도 그때는 인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이제 와서 모든 것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은 정말 하기 싫어. 삶을 너무 가볍게 보는 같아서.
그렇게 노력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애쓰면 살았던 순간의 즐거움은 우리를 지금 이곳에 있게 한 것은 아닐까?
미안해 인생이 의미 없다고 하는 말은 자존심이 상해서 꾹꾹 눌러 참아볼게
이제는 인생이 의미 있어 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