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겠습니까 만 그들과 죽고 못 사는 우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 속에는 저만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 시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작은 친구였으니까요.
친구라고 말하고 새삼스럽게 장난감의 틀에 짝을 맞추려니 말이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친구가 없다고 말하면 그 나이 되도록 인생을 그렇게 산 것이 할 말이냐고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관계에서 특별히라고 언급하는 친구는 분명하게 있습니다. 많은 작가님들의 소중한 만남 속에 특별함을 드러내는 친구는 언제나 곡진한 감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름 지금의 저와 나눌 수 있는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미안함도 있을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만그만한 선에서 그만그만하게 만나고 돌아섭니다.
내게도 그만 그만하니 저들에게도 그만 그만하겠거니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서로 미안함이 덜하겠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등을 돌려 여행을 하고, 저만의 커피를 마시고, 다시 등을 돌려 여행을 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때는 우정과 사랑과 인연의 관계 속에서 불편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멀리하는 습관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자기 방어적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에 습관처럼 포개져 갔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와 지나온 시간 속에 가치 없는 일만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물며 친구라는 관계는 절대적 쌍방의 관계입니다. 때로는 연인의 관계처럼 보일 때도 있고 애증의 관계처럼 더하거나 빼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에는 저의 실수로 토지매매로 사기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개발의 가능성은 아무리 쓸모없는 토지라도 시간이 지나거나 천지가 개벽하면 투자의 손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매한 토지는 지번으로 잘라서 저처럼 허황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반짝이는 별처럼 보이는 땅이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닌 친구의 권유는 안달뱅이에게 조근조근 했습니다.
잘못은 제게 있지만 그 친구는 처음부터 그 토지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매매를 제게 주선한 친구의 마음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친구였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은 제 잘못이고 판단은 제가 하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는 주변 상황에 정확한 판단력을 상실하고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금전적인 손해를 입게 된 것도 제 잘못이지만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판단은 어렵지 않은 판단이 될 수 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끝맺음을 해야 하는 일은
확실한 당위성을 가지고 흘러가더군요. 빈틈없이 마치 오래도록 그렇게 물길이 나 있는 강물처럼 말입니다.
저는 제가 그 대상처럼 허술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친구였으니 할 말도 없습니다 분노와 억울함 어느 중간정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친구와의 관계를 더불어 같은 감정으로 섞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을 달리한 친구를 오래도록 슬픈 마음으로 간직했던 시간도 덤덤해지는 나이입니다. 그래도 세월이 덤덤하게 채색되어 가는 시간 속에 있어도 우리는 친구였으니 오래도록 자랑스럽습니다.
유쾌했던 것이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유유상종이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유유상종이라면 그들에게 고마운 일입니다. 그들이 저를 같은 무리로 생각해 준 것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귀는 것이 친구이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정치와 종교적 견해가 유독 상반된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견해 차이는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만 마음 쓰는 것이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무덤덤한 사이로 지냅니다.
그는 아마도 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도 제가 친구일까요? 아닐까요?
이제는 쓸려 내린 바지 끝단처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잔잔한 흔적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자신만의 폼으로 애지중지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기대 없이 사는 것이 편안한 때입니다.
친구라는 말을 문해력 없이 읽었습니다. 틀린 문장이 보여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더 슬프고 애잔합니다.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