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1년생 소띠다. 생일은 음력 6월 30일이다.
그런데 1961년도에는 음력 6월 30일 없다 6월 29일이 끝이다.
음력으로 6월 30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해에는 없지만 다른 해에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음력으로 61년 6월 30일은 거짓이다. 합을 맞추자면 610629가 참이고, 610630은 거짓이 된다.
처음에는 다리아래 출생도 아니고 윤년처럼 4년마다 음력 6월 30일을 생일처럼 알고 지냈다.
올해는 없으니 오겠지 했다.
하지만 말한 것처럼 만세력으로 확인했을 때 1961년에는 분명 음력 6월 30은 없는 날이다. 양력이면 모르지만 왜 이런 일이 글감이 되고 잘못된 생일을 까놓아야 할까 싶지만, 생일은 나만의 기념일 전에 붉은 선으로 연결된 많은 인연을 기억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은 작고하신 선대조 분들께 들었어야 하는데 그분들도 선명한 기억을 남기지 못하신 걸 보면 아마도 출생기록상의 오기로 짐작할 뿐이다.
조부께서 출생신고를 하셨는데 아마도 6월 그믐에 태어났어가 29일을 30일로 자리 옮김을 했거나, 받아 적는 이 가 30일로 기록했을 것으로 추론할 뿐이다.
삼대독자에 대한 조부님과 면서기의 기분 좋은 대화는 넉넉함이 모든 것을 덜어내도 남았을 것이며 더하거나 빼도 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의 상상이다.
음력 6월은 양력으로 7월과 8월의 어느 곳에 있으니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생일은 삼복더위와 도토리 키재기 하듯 서 있다.
어쩌다 생일도 모르는 아빠와 양력인 딸의 생일이 한 날에 포개지면서 딸의 출산도 삼복더위를 소환했다.
바람 한 점 없던 7월 말에 딸이 태어났다. 딸의 고향인 어느 산부인과는 남편을 산모와 같이 대우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출산의 고통을 찜통더위 속에서 산모의 고통과 함께 고통분담으로 여겼는지 나를 그 속에 남겨 두었다. 그해 여름 젊음만 가득했던 오만한 인생은 무계획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는 생각보다 더웠다.
61년 그 삼복더위에 나는 세상구경을 서두를 맘이 없었는 듯했다.
아침부터 진통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저녁 가까이에 나와 눈을 마주 하셨다.
산통 중인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옷깃을 잡고 계셔서 조부께서는 한동안 목을 쓰지 못하셨다고 들었다.
소가 저녁에 태어났으니 이웃하신 분들은 저 녀석이 저녁 여물이나 먹고살겠거니 하셨지만, 소가 잔나비처럼 살겠는가 말이다. 소는 소였다
인생은 소에게만 저녁이 너그러운 것은 아니고 나름의 고통은 살아 움직일 때 모두에게 같은 무게였다.
올해는 공교롭게 둘째 딸과 생일이 한날한시에 포개졌다.
작고하신 어머니와 안사람의 고생이 쌍으로 더해진 생일을 보냈다. 딸은 양력이고 나는 음력인데 이렇게
포개진 생일은 처음이다.
덕분에 딸의 생일은 홀로 아름답지 못했고 아빠의 의미 없는 심술에 밀려났다. 부녀간에 소리 없는 민폐였다.
철들어 생일은 작고하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나만의 이벤트로 하루를 보낸다. 나의 생일에 특별한 이벤트를 더하거나 축하의 의미를 포개는 일은 생래적으로 잘하지 못한다.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번거롭고 수고스럽기도 한 이유이다. 또한 천성이 수고로움을 징글맞게 싫어하고 남의 수고스러움은 가까이 마주하지도 못한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제도 아내와 딸들의 짝지에게 축하를 받았지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생일에는 작고하신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12년의 짧은 세월을 부모와 자식으로 인연을 맺고, 자식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지워지지 않는 동판에 깊은 생채기를 안고 살아가시면서 내게 생일을 주신 어머니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수천 갑의 인연이 색으로 물들지도 못하고 멀리서 잠시 불어오는 바람처럼 지나가듯 끝났으니
생일도 모르고 사는 남자에게만 곡진할 뿐이다.
나의 생일은 무게추가 잘못 맞추어진 저울로 공평함을 강조하신 불공평한 희생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 생일이 같은 딸을 품에 안고 바라보는 내 눈길 속에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슬픈 생일도 있었다.
삼복더위에 나를 안아서 바라보셨을 그분 생각에 생일은 오래도록 슬픔과 동의어로 남았다.
지금도 생일을 모르고 사는 남자는 슬픈 생일 속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