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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나는 꿈에서도 일을 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 근무했습니다

by 아키세라믹

나는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했다

병원 근무 후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보냈고 퇴직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삼십오 년을 근무한 혈액 관련 업무에 대한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과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업무일지를 작성하면서 나를 또다시 업무와 연관 짓는 행위처럼 낯설고 거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의 글이 오래도록 나를 기억할 것 같아 특별한 감흥 없이 소리 내고 싶었다.

[400cc Q-Bag으로 채혈된 전혈혈액](성분제제로 분리되기 전의 혈액)


직장에서 퇴직했지만 지금도 헌혈과정과 혈액의 입고(헌혈된 혈액의 전산처리 및 성분제제 과정) 절차와 순서를 잊지 않고 있다. 헌혈과정과 혈액성분제제 및 혈액보관은 생각보다 관련규정이 까다롭다.


헌혈한 혈액의 올바른 사용과 헌혈자를 보호하기 위한 혈액관리법은 헌혈과정과 헌혈자의 선별과정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혈액의 입고부터 성분제제(전혈을 성분별로 분리하는 과정) 절차를 정하고 각종혈액의 보관 및 출고의 과정을 특별한 매뉴얼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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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무게측정기 (채혈된 모든 혈액은 무게측정기를 통하여 입고되며 혈액의 무게를 측정한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입력된 방식을 사용하여 통제 가능한 System안에서 움직인다. 인간이 업무를 처리하면서 발생 가능한 오류의 퍼센티지가 없는 기계가 되고 싶었다. 우리의 오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수는 환자에게 가중된 고통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절차와 결과물에 대한 검열은 조심스럽고 엄격했다. 보관장비의 온도는 매시간 관리되고 결과물은 이중삼중으로 체크한다.


나는 퇴직 전까지 혈소판 성분헌혈의 혈소판 수를 검사했다. 60~90분 정도 원하는 혈소판만 채혈하고 다른 성분은 되돌려주는 혈소판 성분헌혈은 채혈과 진행의 난도가 높은 헌혈에 속하고 쓰임도 매우 중요하다.

IMG_7885.JPG [혈액원심분리기] (전혈혈액을 혈장성분과 혈구성분으로 분리하는 혈액원심분리기)

1987년에 입사를 했으며 국가에서 대한적십자사에 위임한 초기 혈액사업의 진행과정 중에 있었다.

B형 간염, C형 간염, 간기능검사가 기계화되고 System화 되는 시기에 이동해 가며 담당자로 업무를 했다.

나는 발전해 가는 적십자사의 혈액사업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내가 혈액사업에 기여한 부분을 자랑하거나 부각할 생각은 없다. 조직은 스스로 거대해지고 발전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 중에 다만 조직의 일원이었고 퇴직한 직장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설명하는 자리가 주어진다 해도 유쾌한 즐거움으로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있을 것이다. 직장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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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분리된 혈액을 혈장과 혈구로 분리하기 전과 혈장 분리기]


하지만 나는 적십자사만이 가진 직장문화와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불편함 없이 퇴직했다. 그 오랜 세월을 붙임 없이 지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응급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혈액을 검사하고 공급하는 업무는 언제나 나에게 충분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삶이었다.

모든 적십자인에게 있는 국민을 위한 봉사의 마음도 젊음을 함께한 수고와 가치로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행복했다. 그들의 꿈과 행복, 봉사의 정신은 지금도 지나온 세월 속의 가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혈구 농축액과 혈장으로 분리하는 과정] [분리된 혈장은 재원심 하여 혈장과 혈소판 농축액으로 분리된다]


한편으로 우리는 출근하는 직장인이었고 여러 번 변한 강산 속에서, 훌륭한 직장 속에서도 우리를 직장인으로 명칭 화해서 때때로 어려웠는지 모른다. 행복하고 만족했지만 시월드와 다르지 않았다.

퇴직 후에도 나는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근무 중인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지금도 전 직장 동료와 근무 중인 꿈을 꾸며 현실과 과거를 오가고 있으니 좋은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각인된 모든 삶이 때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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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소판을 집중 채혈한 성분채혈 혈소판 혈액] 나는 혈액 안에 적정량의 혈소판이 잔류하고 있는지 검사했다.


적십자사에도 노동조합이 있어요? 우리가 받는 질문 중에 가장 낯선 질문이다.

퇴직 전까지 나는 퇴직한 직장의 노동조합 창립멤버였고 한때 조합의 지부장을 지냈다. 동료의 해고와 복직을 목격했고 수없는 집회에 참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파업으로 업무를 떠난 때도 있었다.

우리는 필수공익사업에 속한 사업장으로 전면 파업은 할 수 없었지만 모든 노동자에게 주어진 단체 행동은 우리에게도 정당했다. 다만 때때로 노사가 구분되지 않았고 격하게 구분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에게 바른 인식을 더하고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가치를 더할 때가 많았다.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과한 결과에 치우칠 수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발전할 수 있었다.

내게 지금도 남아 있는 그들은 동지였으며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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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농축액, 신선동결혈장, 혈소판농축액으로 분리 보관하고 혈장은 급속동결하여 1년 동안 보관한다]


글을 마주하는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감흥을 더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책임이다.

누구나 경험한 직장생활을 퇴직일기처럼 나열하는 것은 좋은 글에 속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처럼 나열한 글은 마무리에 고민이 더 할 수밖에 없다. 창작의 범주안에 넣기에 부족하다.

나는 나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을 의미 없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삶을 기억하고 내용은 브런치스토리 기록의 틀 안에 넣어 보관하고 싶었다. 욕심을 더한다면 거기에 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넘치고 과정은 담아내기 과분한 정도로 많지만 그것이 또한 글이 되기에는 미숙하여 짧은 영상처럼 나를 기억한다.


단순한 욕심에 자그러워도 읽는 분이 뒤 살펴 주시기를 바란다.





이상의 내용과 사진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업무과정이 유튜브와 혈액관리본부의 홍보과정에도 공개된 바 있어 사용했으며 대한적십자사의 관련규정에 제한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삭제할 수 있음을 공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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