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갑니다 곧 갑니다

by 아키세라믹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챙겨 떠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은 지금 내가 어려워하는 수고로움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담아내는지는 어디로 갈까였고, 필사로 옮겨지는 문장은 거기로 가는 열차표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거기에 가서 쓰고 싶었다.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기는 지도 위의 지명에 불과했다.


준비하는 것은 조심스러웠고 과정은 더디 흘러갔으며 나를 조급증 환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애써 거기에 가고 싶었다. 수없이 기다려를 반복했고 기다리는 것은 고통이 동반되는 시틋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그런 과정은 나의 준비를 선명하게 해주는 고되지만 즐거운 필사였다.


쓰는 연습은 당연히 필요했다. 기다림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나의 기대는 거기에 수없이 들고 났으며, 그래서 남들이 애쓰는 곳에 함께 남아 있었다. 그들을 눈여겨보고 행동을 같이함에 주저함이 없는 것도 그래서였다.


악필을 교정하고 읽고 생각하는 방법과 진한 사투리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당연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급한 마음을 어떻게 내려앉게 만들어야 하는지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 절반쯤 마음을 안정시키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끝은 반드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곳을 기대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나는 쓰고 싶은 곳을 기대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확신하고 있다.

쓰고 싶은 곳 거기에서 쓰고 싶은 것에 대한 기대는 첫 문장처럼 오래도록 어렵겠지만 가까워지고 있다.

쓰는 곳이 쓰는 것을 충분히 감싸고 있는 느낌은 신선한 리추얼이 될 것이다.


낯선 아침을 맞이하고 칸으로 나눠놓은 겨울 방학 일정표를 준비할 것이다. 벽에 붙여놓은 일정표를 바라보며

다정한 커피집도 찾아야 하고 아내의 음식과 같은 채도의 음식도 골라야 한다. 아내는 멀리 있지만 매일 나의 연서는 새로운 기대로 나를 흥분시킬 것이다. 먼 곳에서 아내에게 들리게 하고 싶다.


잘 잤나요.

일어났나요.

차는 마셨나요.


준비 없이 떠나는 마음은 생래적인 의식에 지나지 않겠지만, 쓰고 싶은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행복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처럼 다정하고 싶다.


여름의 시작점에 있었지만 나는 겨울 옷을 꺼내 놓고 있었다. 고르고 골라 담은 어휘와 필사문장은 그 겨울

나를 외롭지 않고 충분히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보기를 준비하면서 나는 수염을 깍지 않기로 했다. 수염은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때는 시작처럼 돌아오고 싶다.


머리카락과 온몸의 검은색 털이 무색하게 수염은 찹쌀떡을 먹다가 고개를 들고 웃고 있는 사람처럼 흰색으로 물들어, 나를 더 오랜 세월 떠밀어 앞세우는 징표처럼 보이게 한다. 때로는 산타처럼 때로는 집 없는 사람처럼

겨울과 나는 이만큼 가까이 있다. 부침 없는 희망은 변화 없이 내게 남아서 군색함이 없는 모습으로 함께 동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의 기대를 밀어 올리는 그곳은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눈을 뜨면 일주일이 지나가고, 눈을 돌리면 한 달이 물러나 있고, 정신을 좀 차리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선량


바로 갈 거야

곧 갈 거야

이 계절 끝에는 꼭 갈 거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때 우리의 젊은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