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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립 May 05. 2021

첫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실직을 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곳이 없다는느낌

내가 정식으로 취업한 첫 회사였다. 경영 악화로 몇 개 부서가 해체되었는데 그중에 내가 소속되었던 부서도 포함되었다. 비교적 대체하기 쉬운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권고사직이 되었고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필요한 기술이 있던 이들은 부서를 옮기며 일자리를 지켰다. 당시 나에겐 대출로 산 작은 아파트와 차가 있었고, 아내가 있었고, 돌이 안 된 딸이 있었다.


막막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실직이 아직 와 닿지도 않아 어럽지 않게 아내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언가의 종료나 시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작은 회사를 만들고 경영하며 여러 가지 고비를 넘겨보았고 어려울 땐 프리랜서 활동으로 필요한 돈을 만들 수 있는 내 능력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이 다시 한번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한동안은 그런 나의 낙관과, 내가 낙심하지 않길 바라는 아내의 배려로 그렇게 멈춰있는 시간을 즐겼다. 

육아에 도움이 많이 필요할 때 내가 집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정신승리도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러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참가해야 하는 교육을 이수하거나 구직 활동을 증명하는 서류를 낼 때, 그제야 나는 현실을 조금씩 더 납득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내 서류를 받은 담당자가 인사를 건넸다.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

이력서를 채워야 했는데 딱히 내세울 게 없었다. 사회에 나온 지 5년이 되었지만 이것저것 새로운 것, 관심 있는 것을 쫓아다닌 탓에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이었다. 뭘 쓰려고 해도 부족하고 뚜렷한 성과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내가 세상의 벽을 직면했다. 그제야 나는 해고를 당하며 마음속에 거절의 파편들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회사 입장에서 내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데서, 어떤 이들은 남겨졌지만 나는 밖으로 내몰렸다는 데서 자존감의 상처가 깊다는 걸 알게 됐다. 어디에 내놔도 애매하고 부족할 것 같았다. 이력서 폼은 길고, 나는 채울 게 없는 기재란이 많았다. 새로 찍은 이력서용 증명사진만 말끔했다.


SNS 프로필에 어디서 무얼 담당했고, 어디서 무얼 맡고 있다고 써둔 사람들의 한 줄 한 줄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뭔가 더 쓰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한 줄이 '전문적인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 시절의 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나의 쓸 데 없음, 탈락자의 자조를 육아와 가사에 몰입하는 것으로 잊으려고 했다. 그러니 나에게 있는 전문성 1번은 남편이자 아빠였고, 소속은 회사가 없으니 우리 가족이었다. 이 소개 말을 자소서 어딘가에 숨기듯이 넣었다. 내 서류를 심사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것이 내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겠지만, 나에겐 실제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후로도 네댓 번 회사를 옮겼다. 첫째 아이는 이제 학교를 다니고 조용히 태어난 둘째도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리고 코로나로 일 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나는 다시 그때를 떠올리고 있다.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놀리고, 재우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이렇게 나는 또다시 전문적인 남편이자 아빠를 담당하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일도 하면서 그러고 있다는 것뿐. 


삶의 어느 순간에 사람들은 가족으로 돌아간다. 나처럼 실직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생각지 못한 상황에 밖이 위험해져서 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프면 간병을 해줄 사람을 찾아, 결혼으로 꾸린 가족이 힘겨워서 다시 원래의 가족이 있던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 나와 아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먹고 잔다는 것이 인간의 모든 생애를 종합해주는 단면이 아닌가 싶어 이따금씩 경외감이 든다.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자연의 질서 아래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그들의 공통의 천직(天職)은 인간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다. 내 생각에 결혼한 남자 인간인 나에게 천직이란 남편이자 아빠일 것이고, 인생에서 성공해야 할 단 하나의 직장이 있다면 가족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게 가장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가족은 옮길 수가 없다. 행정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족의 이런 속성을 배워가는 데서 나에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외벌이 상태에서 내가 실직을 했다는 건 어찌 보면 개인적인 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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