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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립 May 29. 2021

"내 남편은 스킨십에 별 관심이 없는 거 같아"

아내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오래된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내와 함께 친구이기도 한데 우린 지난 10년은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결혼식도 가보지 못했는데 그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있었다. 여전히 털털한 성격인 친구는 넓은 시간의 틈을 신경 쓰지 않고 옛날처럼 이야길 쏟아 놓았다. 자리엔 아내도 있었고 다른 친구들도 있었다.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라면 그렇긴 하다. 아 너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는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얼개를 만들며 벌어졌던 시간을 기워나갔다.


친구의 이야기는 대부분 삶의 문제에 대한 토로였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남편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남편과의 스킨십이 없다는 이야기도 슬쩍 나왔다. 친구는 그 부분에서 남편에게 불만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서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스킨십이 없는 부부생활에 대한 친구의 해명은 이랬다.

"잘은 모르겠는데.. 내 남편은 스킨십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인 거 같아."


그리고 친구는 바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서 나만 남자였기 때문일 거다. 나는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우습게 말을 더듬었다.

".. 내가 알기론.. 그런 남자는.. 없는데?"


친구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우린 조금 점잖은 표현으로 '스킨십'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부부간의 섹스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다. 내가 알기론 섹스에 욕구가 없는 남자는 없다. 모든 남자가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갖고 있다. 생각보다 일찍부터, 그리고 생각보다 늦게까지.


남자의 대표인 양 그 자리에 앉은 탓에 이걸 분명히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방금 친구가 말한 것처럼 친구의 남편이 성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게 되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성욕이 있어도 아내와의 섹스는 거부한다는 더 껄끄러운 문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는 자신의 남편을 성욕 없는 사람으로 설정했을 거다.


그럼 섹스를 하지 않는 남편들은 어떻게 살고 있다는 걸까.

남자가 부부관계에서 섹스를 원치 이유로 피곤하고 바빠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남성의학적 문제로 인해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 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섹스를 하고 싶지만 그게 부부관계에서는 잘 안 돼서 다른 방식으로 성욕을 충족하고, 그러다 보니 더욱 부부 사이의 섹스에 관심이 없어지는.. 그 순환 관계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와의 섹스가 아닌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자극은 익숙해지고 지루해진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면서 계속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육체적 제어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성적 흥분을 느끼게 해주는 뭔가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그게 대부분은 자위일 테고 어떤 경우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일 수 있다. 새로운 자극이 있으면 그때는 손쉽게 다시 '잘 된다'. 섹스가 갖는 다른 중요한 가치들은 제쳐두고 성욕을 충족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렇다. 친구의 남편은 분명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내와의 잠자리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외려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한때 나는 아내에게 앞으로 섹스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자위가 내 욕구를 채워줄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판단했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던 그때 우리의 관계를 뭐라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한 집에서 살아가지만 각자 다른 기능을 하는 물건들 같았다. 정신적인 유대감이 희미해지는 것과 동시에 서로에게서 성적 매력을 찾기도 어려웠다. 나는 남자도, 아빠도, 때론 사람도 아닌 것 같았고 아내도 여자도, 엄마도, 때론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늘어진 티셔츠에 냉장고 바지, 기름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살림과 육아에 허덕였다. 자기 꼴을 돌볼 시간도 없는데 상대에게 보여줄 성적 매력 따윈 없었다. 그 와중에 성욕을 채우기 위해 벌이는 섹스는 힘겨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잘 안 됐다. 그래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내는 그때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그래도 섹스를 원한다고 했다. 이 주제에 대해 서로가 욕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부 사이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잘 안 되는 섹스는 쾌감이 없는 것 이상으로 굴욕적이다. 그러면 그 불편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탓할 대상을 찾고, 주로 상대가 성적 매력이 없다는 데로 향한다. 그리고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뭔가를 찾으려 한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이 열 가지라면 섹스는 일곱 번째일 것이다. 당신이 섹스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열 가지 중 다섯 가지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섹스를 하려면 당신은 매우 의식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 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중

그때 나는 섹스의 낭만적인 면만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상대와의 환상적인 섹스 같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부부간의 섹스는 서로 오랜 시간 함께 노력하면서 이뤄나가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의식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의식이 부부에게 만들어주는 결속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의식이 더 충만해지고 더 오래 유지되기 위해 나는 성욕을 채우는 대체 수단을 찾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나와 아내의 성적인 매력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서로 깊은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평생 아내와 함께 침대를 쓰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말이다.




친구는 이번에는 이혼 절차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그때 섹스리스를 선언했었던 나, 그리고 동의하지 않았던 아내, 요즘 우리의 섹스. 그런 생각을 하느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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