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혜인 Dec 29. 2019

나이의 본질

타인의 눈에 담긴 나, 그리고 나


 토요일이 너무 바쁜 날이 되어버렸다. 오전에 하는 스터디를 갔다가 바로 글쓰기 수업에 간다. 스터디만 하고 수업만 가면 별로 안 바쁜데 요즘, 수업 시간에 현장 글쓰기를 한다. 스터디를 가면 현장 글쓰기 제시간에 도착을 못해서 미리 글을 써가야 하는데 이번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이란 게 참 난해한데 그 이유는 어느 정도가 정말 잘 쓴 글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되어서다. 그럴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완성도 있는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에서 전하고 싶은 주제가 너무 평범하다는 말을 들을 때. 아무리 표현해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이 잘 안 된다면 접근 방식에서 변형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님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참 많이 느꼈다. 재밌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상대방의 조언에 반문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요즘은 피드백을 들어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가늠이 안 된다. 나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최근 매주 토요일마다 회식하고 있는데 갈 때마다 너무 힘들다. 토요일 저녁은 통째로 날아가고 일요일 오전까지 영향을 준다. 원래 꺾어 마시는 편은 아니라서 이번에는 마시는 빈도를 좀 줄여 마셨다.


 사범대학교 나온 어떤 친구랑 한동안 교육과 유학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재밌었다. 내가 하는 말에 공감을 많이 해주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있게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웠다.


 웬만한 친구들의 나이는 스물여섯. 내 나이 스물여섯은 나의 가장 전성기였던 때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꺾여 버린 것 같다. 내 인생이 참, 삼국시대의 백제와 비슷한 것 같다. 초창기에 엄청난 전성기를 누리고 갈수록 멸해가는. 전성기는 빨리 맞이한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그 와중에 우리 반 반장이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놀랐다. 진짜 겉모습은 스물다섯 같았는데. 나보다 5개월 일찍 태어난 동년배 친구였다. 그런데 곧, 알게 됐다. 그 친구와 내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그 친구가 스물다섯처럼 보였던 건 그 친구가 풍기는 분위기가 풋풋하고 젊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분위기. 생각해보면 풋풋함이라는 게 어느 순간 내게서 날아간 것 같지 않다. 나는 원래 풋풋하지 않았다. 항상 생각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늙었다. 그러니 나이도 늙어 보이는 거겠지. 마음이 젊다면 내 나이가 몇이든 스스로 젊다고 여길 수 있다.



 1차 술자리가 끝나고 2차로 넘어가기 전, 친구 J와 함께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던 중 오늘 알게 된 스물여섯의 한 친구 K가 합류했다. 그런데 우리 얘기를 듣고 함께 빠져나오겠다고 한 K가 1차 회식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중간에 길가 벤치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어떡할지 고민하다 K를 업고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J가 업겠다고 했다. 살짝 걱정됐지만 그러라고 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J는 K를 업고 일어서질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업겠다고 했다.


 K를 힘껏 끌어당겨 내 등에 업히게 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더는 K가 업히지 않으려고 했다. K의 완강한 거부로 우린 둘 다 나가떨어졌다. 빨리 집에 가라고 호통치는 역할극도 해보고, 경찰 코스프레도 해보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봤는데 K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아, 이런 게 바로 대학생의 술자리 문화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와중에도 드라마에서만 보던 걸 실제로 경험해봐서 너무 신기했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K를 집에 보내긴 했다. 지금 스물여섯의 친구를 보니, 참 예뻐 보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스스로 젊다고 생각했던 적은 스물한 살이었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스물두 살에는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스물한 살이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스물셋이었을 때부터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했고, 이후 차차 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은 젊고 예뻤다. 지금의 나도 내년, 내후년, 그 후년에 보면 젊고 예뻐 보이겠지.



 스물넷과 스물여섯에는 늙었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던 유일한 때였다. 그런데 그때는 큰 사건들이 있었다. 스물넷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스물여섯에 나름 큰 회사에 취업했다.


 스물넷이었을 때 동년배 친구들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스물여섯이었을 땐, 주변에서 취업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때 주변의 많은 사람이 내게 “어린 나이에 벌써 그런 걸 했어?”라고 말을 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도.


 우리가 우리 나이의 젊음을 인식하는 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그것도 나와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에 따라 내 인생이 그들의 인생과 무엇이 얼마큼 다른지에 따라 내 나이의 젊음이 가늠되는 것 같다.


 최대한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건 너무 뻔해서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나 자신이 얼마나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는가이다. 그러려면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걸 더 크게 보는 게 필요한데 나는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하나의 결핍이 너무 크게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