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혜인 May 03. 2020

행복과 불행, 그 한 끗 차이

흘러간 세월을 느낄 때 난,


 정말 친한 친구가 결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대 초반에 친했던 친구고 지금은 일상을 거의 공유하지 않는 친구다. 하지만 지난 8년간 우리는 크고 작은 대소사를 함께 해왔다. 서로의 중대사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계속해서 친분을 쌓아왔었다. 그렇다. 친함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이 정도면 친하다는 범주에 속하긴 할 것이다. 비록 내 체감적인 친밀도는 예전만 못하지만. 어쨌든.


 결혼식을 위해 도쿄까지 날아갔다. 정말 신기한 결혼식이었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서 한 건 결혼식이 아닌 결혼 파티였다. 나도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양이 아닌 질적으로 정말 소중한 사람들만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을 통해 본 친구의 삶은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나 달랐다. 24살에 영어 선생이라는 꿈을 이룬 친구의 삶에는 취업 준비생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결혼한 건 처음 있는 일인지라 기분이 아리송했다. 이제 우리가 결혼 연령대에 들어온 건가 싶었다. 스무 살은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나는 전혀 변한 게 없는데 나를 둘러싼 환경은 이다지도 변해 있구나.


 도쿄에서조차 너무너무 바빴다. 당장 이틀 뒤에 기획안 발표를 해야 했다. 그건 또 팀 미션이었기 때문에 나는 팀원들이 만든 기획안에 계속해서 피드백해야 했다. 우리 팀원은 둘 다 능력자들이었다. 필기 합격자는 필기 합격자의 포스가 있었다. 그 포스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 거 같았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 온라인 스터디를 함께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서 공부를 잘하고 있느냐는 카톡이 왔다. 그 친구는 자기가 만든 자료까지 내게 보내주었다. 이렇게 조력자가 많으니 언젠가 꼭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이 숨 막히게 지나가고 드디어 맞이한 화요일.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진짜 오래간만에 쾌적한 사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유 없이 힘들었다. 계속 웹툰 보면서 누워 있다가 방 청소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도 너무 더운데 집안 에어컨은 또 제대로 작동도 안 한다. 관리인은 또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이런 기본적인 건 제대로 관리해주지도 않았다. 관리비는 그렇게 받으면서. 빨리 이사 해야겠다.


 진짜 뭔가를 준비하는 것을 안 하면 이렇게 인생이 편하고 좋은데. 이제는 준비하는 것도 지치고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지친다. 이제야 지친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항상 나이 압박을 받는다. 과거를 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순간 중 지금이 가장 늙은 순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다. 그러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베일에 가린 미래를 보는 것보다 화석이 되어버린 과거를 보는 게 더 편하다. 불행은 비교에서 오는 것. 과거도, 미래도, 어느 시점과도 비교하지 않는 현재를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회사 업무는 이제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너무나 바쁜 2분기 정산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모든 회사 업무를 내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진짜 멍청하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돈 이체도, 세금계산서 발행도, 입금 확인도 모두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마치 이 회사가 내 회사 같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일이 밀려서 욕 들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컴퓨터보다 휴대폰으로 일하면 더 빠르니까. 나를 믿어주는 대표님이 고마웠다. 비록 피곤할 때면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게 상사이지만, 지금 누리는 자유만으로도 대표님이 무척 고마운 건 사실이니까.


 어쩌면 말이다.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품지 않는 게 더 현실에 충실할 방법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꿈꾸고 싶지 않다. 변화의 순간은 지금껏 내가 쌓아온 시스템을 무너트려야 만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어떤 빛을 보면서 달려가 낯선 어둠을 만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안정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꿈을 버린다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은 쟁취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욕망하는 것을 버릴 때 내 앞에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 아이러니함.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았던 꿈을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언제쯤 내가 원하는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까. 꿈을 버리고 행복한 것과 꿈을 취하고 불행한 것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꿈을 취하고 불행한 것을 택한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배팅을 건다. 사주를 통해서라도 미래를 짐작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사주 앱으로 미래를 점쳐봤더니 그리 밝은 말들이 없다. 이런, 사주는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래도 오늘 내 운세 점수는 80점이니 여기에 만족하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의 다른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