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에 논쟁을 청하는 도전적인 40대 젊은 선생. 자기가 현직에 있을 때 경험과 공부한 내용을
20년째 사골 우리듯 우려먹는 나이 많은 정교수들의 고리타분함 사이에서 당연히 빛이 나는 젊은 강사였다.
거기에 늦은 전공수업이 끝나면 후덕한 몸매에 푸근한 인상으로 학교 근처 곱창집에 수강생을 불러 둘러앉아 소맥 한잔을 권하는 인간적인 매력까지 있었다.
계약직을 끝내고 복학해 학교 수업이 재미있던 3학년 두 번째 학기, 복학생 나는 선생의 전공수업을 들으며 친해졌다. 수업과 술자리에서 시작되어 선 때로는 심부름으로 과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집에 건네는 심부름부터, 종강 후에는 소주 한잔에 다른 학교 기말고사 채점을 도울 정도까지.
종강 후 계절수업 학기로 학교에 남아있던 수험용 전공 강의를 할 테니 관심 있으면 그냥 들으라는 선생 말에
강의를 들을 때였다. 수업 끝나면 선생님이 모아 온 몇 명과 가끔씩 한잔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고, 늘 그렇듯 전화로 저녁에 스케줄 있냐며 묻는 선생에게 나가겠다고 대답하고 도서관 로비로 나갔는데, 생소한 모자 쓴 여자아이가 선생님과 같이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웃는 눈매가 예쁜, 손에 반지 문신을 했던 같은 학부 후배.
술이 깊어지고 선생은 2차 3차를 불렀고, 경복궁 어느 선술집에서
얘기 좋아하는 선생의 얘기를 나란히 앉아 듣다 나는 선생님을 보면서
테이블 밑에서 그 아이 손을 잡았다. 한겨울 차게 식은 그 아이 손에 내 온기를 덜었고,
4차를 부르는 취한 선생님을 택시 잡아 보내고 같이 취한 아이와 택시로 종로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취한 채 피식 웃으며 맥주 한잔을 더 하자며 취한 채 기대는 너를
조심히 안고 있다 지하철에 바래다주던 그날의 나. 그 이후에도 그렇게 두어 번을 만나
손을 쓸고, 뒤에서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며 머리를 쓸어주던 것이 설레던.
20대의 나와 내 세상은 그렇게 재미없게 순수한 물정 모르는 미성숙한 그것이었다.
선생 모교 앞까지는 가서 모였던 얼마 후의 술자리.
선생님이 화장실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고 잠시 후에 그 아이도 자리를 비웠다.
10분, 15분.
돌아오지 않는 그 아이가 취해서 어디 기대 졸고 있나 술집을 돌아보던 그 날
술집 뒤편 창고 앞에서 나는 멍해지는 광경을 마주했다.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던 사람은 안경이 잔뜩 찌그러질 정도로 격하게 그 애와
입을 맞추며 벽에 밀착해 쓰다듬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앉은 나를 뒤늦게 따라온 선생님에게
'오늘은 그만하겠습니다' 말하고 조용히 그 애 손을 끌고 나온 술집 입구에서,
지하 술집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던 그 애와 그 앞에서 멍 해졌던 스물일곱의 나.
내가 알던 선생님이라는 존재의 행동양식
관념. 상식. 머릿속에 알고있던 많은 것이 하얗게 질렸다.
나와 손을 잡고, 품에 안겨 단 눈빛을 나와 마주치던 그 아이가
기혼의 40대 선생과 입을 맞추고, 자의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내 손을 뿌리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던 그 장면.
입을 닫은 채 나는 얼마를 앓았고, 잡히지 않는 책을 부여잡고 열람실에서 멍하니 있다 수업을 오가기를 반복했다. 세상은 잿빛이었고, 내가 알고 기대던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알량하고 현실과 동떨어졌나를 생각하며 나는 나를 자책했고, 이런 것에 충격을 받는 나약함을 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