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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구름 기린 Apr 06. 2020

5. Routine.

평일의 쳇바퀴

월요일 아침이면 5시 40분에 울리는 첫 알람으로 멀어져 있던 의식의 소환.

20분 간격으로 울리는 마지막 세 번째 알람이 데드라인. 푹 자서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10~20분 먼저,

날씨가 꾸물거리거나 컨디션이 무거운 날은 마지막 알람을 듣고도 5분을 미적거리다 일어나서 쫓기듯 

욕실에 들어선다.


샤워기를 틀어 온수가 나오기를 미적거리며 기다리다, 몸을 넣어도 될 정도로 물이 따듯해졌을 즈음 

칫솔을 입에 물고 비누로 턱과 볼을 문지르면서 거품을 낸다. 적당히 수염이 풀어졌을 때 따듯한 

물에 날이 선 면도기를 아래에서 위로 쓱쓱쓱.  컨디션이 안 좋거나 면도날이 잘 듣지 않는 날이면 

꼭 한 두 군데를 벤다.


7시 5분을 전후로 이면 집 앞에서 회사까지 가는 빨간색 버스가 정거장을 지난다.

배차마저도 긴 망할 이 버스는 기사의 컨디션에 따라 5분이 빨라지거나 10분이 늦어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근처 대학교 방학시즌에 따라 배차시간이 고지없이 변동된다는 것)

3일 연속 안정적으로 7시 15분을 지나던 버스에 익숙해졌다가 뒤통수 맞는 패턴을 몇년 째.

수익성이 낮은 망할 노선은 배차가 길어 차를 놓치면 같은 출근길을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20~30분을 더 소비해야 사무실에 도착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요즘은 아예 강남을 거쳐 출근한다. 경기도에서 강남을 거쳐 다시 경기도로.)


요즘의 출근길 집는 아이템은 천 원짜리 가공우유.

바나나 우유가 1번, 없으면 커피우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사무실에 도착하면

자리에 가방을 놓으며 데스크톱의 전원을 넣고 정수기에서 얼음을 받아 우유를 붓는다.


나의 일. 그리고 굳이 내 일이 아니어도 되는 일. 쓰리쿠션으로 내게 돌아온 일. 

상사의 배분 오류로 돌아온 일. 여러 사유의 일을 치우느라 바쁜 날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가하고 한가해 커뮤니티와 부동산 사이트에서 원룸을 찾아보다가 

보낸 오전일 수도 있는 나의 일.


점심은 이삼일은 출근길에 집어 온 더럽게 비싼 빵집 놈들 샐러드, 나머지는 부서

상사들과 먹는 밥. 한 일년을 체중 증가를 핑계로 샐러드로 때우며 점심 합석을 거부했더니 

밥 먹으면서 일 진행사항 묻는 매너나 메뉴 고르라며 지랄하던 까탈은 좀 없어진 듯하다.

아니면 내가 짬밥이 된 걸 인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간 한 번씩 썩은 표정으로

냉기를 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치우다 별 일이 없으면 6시 10분쯤 사무실에서 출발.

후배 차로 용인 근처 동네로 이동해서 지하철과 마을버스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출근 루트와 같이 반대편의 광역버스로 귀가.

(요즈음은 버스로 양재꽃시장을 거쳐 집으로)


맥주나 탄산수가 떨어졌을 때, 기타 뭔가 장 볼거리가 떠오른 때는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본다.

밥 해 먹기 귀찮은 며칠은 외식을 한다. 밥을 먹고 난 뒤 시간에는 이틀은 탄천을 뛴다. 

피크 때는 5km를 채우더니, 덥다 다리 아프다는 핑계로 그 절반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간신히 채운다.

(요즘은 그저 확찐자.. 주말 아침 하루이틀정도만 뒷산을 두 시간 못 미치게 탄다.)


씻고 책상 또는 침대에서 영상을 본다. 그러다 11시 전후 보고 있는 것에 내용 파악의 의지가 

약해진 시간이면 TV를 끄고 휴대폰으로 보던 영상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의식이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첫 알람에 눈을 뜬다.


직장 생활 8년 차, 부분 부분 자의와 타의 / 환경에 의해 수정되며 짜여 온 

참 빈틈없이 지루해진 평일의 쳇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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