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이미 사회인이면서도, 아직도 사회화가 되지 못한 나를 위해

by realnorth

극적인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삶은 극적인 순간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여지없이 허물어졌던 어느날, 나는 그렇게도 쓸쓸했다.


나는 자유로운 가운데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나는 상상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면서도, 상상력이 없다고 느꼈다.

눈앞에 놓여있는 작은 볼펜 하나조차도 넘어서지 못하고 바스러져버리는 헛된 상상을 주워담으며,

언젠가는 자유로워 질 수 있을 나를 꿈꿨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여지없이 허물어졌던 어느날, 나는 그렇게도 슬펐더랬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텔레비젼 속 여배우라도 된 것처럼 고상한 표정을 연습하곤 했던 그 소녀처럼,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 자신을 설명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나는, 거무튀튀한 얼굴에 땀에 절은 목소리로 하루를 토해내는 일용직 노동자처럼,

끝도없이 나 자신에 대해 서술해대면서, 실은 내일조차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사회생활이란 이런것이라는 말들을 되짚어놓는다.

그들은 간혹 자신의 아내에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 따위를 늘어놓는 모양이다.


사회생활이란 범속한 사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서술도 할 수 없을때에 비로소 꺼내어 놓는 화두다.

범속한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라는 말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든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무한히 확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기만적이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무례한 짓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그는 그런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 할 도리가 없게 된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것은 이내 불면증이 되거나 신경증적 발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속내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 조악한 타인의 환상에 부합함으로써 오늘 저녁의 찬거리를 얻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걸까..

나에게는 더 이상 미혹에 빠진 나 자신을 관찰할 시간과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걸까.

나에게는 더 이상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부자유하다며 한탄 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걸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슬퍼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슬퍼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꽤나 오래도록 타인과의 교감없이 혼잣말을 읊조리며 살아왔다.

그것이 내겐 지독하게 외로운 위안이 되어왔다.

낯선 타인의 환상 앞에서 발가벗겨지지 않고, 그의 환상에 강요되지 않으면서, 내 멋대로 고뇌하고, 내 멋대로 우울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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