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by realnorth

#1. "좋은 것"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조교실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이크를 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기만 하던 마이크는, 그가 빌려가자마자 고장이 났다. 배터리를 교체했는데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녀석은 괜히 내 마이크를 빌리는 바람에,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오가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기어이 마이크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빈 강의실에 함부로 나뒹굴던, 출처 불명의 노래방 마이크를 연결했다고 했다. 나로서는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괜히 미안해졌다. 왜 하필이면, 그가 마이크를 빌려갔을때 고장이 났을까. 그는 나에게 마이크를 빌려주어 고맙다고 할까, 아니면 나 때문에 고생하게 되었다며 화를 낼까. 녀석은 잠시후 내게 와서 번번히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사회성 있고 밝은 후배놈은 제법 서글서글한 어조로, 좋은 하루를 보내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좋은 하루라. 좋은 하루라는 건 어떤 것일까? 투명하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어보이면 좋은 하루가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남들처럼 현실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미래를 준비해야만 보람차고 좋은 하루가 되는 걸까. 아니면, 한껏 멋을 낸 여자 학부생들을 보면서 해벌쭉 하고 있어야 좋은 하루가 되는 걸까. 좋은 하루라는 그의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람들은 좋은 하루가 되라는 말을 종종 인삿말로 남긴다. 하지만, 좋은 하루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좋은 것"일까?


#2. 1센티미터쯤의 차이

연구실에 돌아오니, 제법 부산했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 있었던 도난사건 때문인 모양이다. 연구실에서 노트북을 도난당한 동료는 기운없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연구실 실장이 이런 저런 농담들을 건넸지만, 동료의 얼굴에서는 그림자가 가시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누가 그랬을까.

학부 재학시절, 나는 정말 학교에서 많은 물건을 주웠다. 나는 매번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심지어는 학교에 오기 힘들다는 사람을 위해 직접 택배를 부쳐주기도 했었다. 대체 누가 고의적으로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걸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세상이라지만, 그리고 매일같이 뉴스 지면을 장식하는 끔찍한 범죄들이 눈에 띄인다지만, 내 눈앞에서 이런 일이 생길 꺼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도덕적 의지에서 삶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삶을 획책한다. 왜일까. 이런게 바로 좋은 하루라는 것일까. 아침부터 누군가의 힘빠진 표정과, 범범 행위의 현장에서 오늘 하루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챙기는 것이 좋은 하루인 걸까. 범죄 현장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수업 자료들을 챙기면 되는 것일까. 나는 그 도둑이 저지른 죄로부터 과연 자유로운 걸까. 누군가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나의 좋은 하루를 위해 오늘도 어제와 같은 평범한 감정으로, 범죄 현장에 들어와 내 물건들을 챙겨서 가지고 나가면 되는 걸까.

울적해보이는 동료의 얼굴을 마주대하면서, 웃어보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위로를 건넬 수도 없었다.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평소 그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지만, 친하다고 하더라도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피해 동료가 안타깝고, 그가 걱정됐지만, 조교일을 해야 했고, 수업에 들어가야 했고, 점심을 먹어야 했다. 어떤 타인도 타인을 넘어서지 못한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야 한다.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어쨌건 나는 오늘 나의 할일을 묵묵히 해냈다. 나는 그 도둑에 비해서 과연 도덕적으로 얼마만큼이나 우위에 놓여있는 것일까. 대충, 1 센티미터쯤이라고 보면 맞는게 아닐까.


#3. 식사

오늘은 길건너편 학교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다. 사람들과 한참을 떠들고 나니, 배가 고팠다. 때마침 수업이 일찍 끝나서, 나는 수업을 같이 듣는 형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나는 오늘 이 식사꺼리를 얻기 위해, 어떤 가치있는 일을 했을까.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무쇠 돌솥밥을 눈앞에 두고, 나는 왜 그런 생각들을 했을까. 나는 오늘 밥을 먹어도 되는 걸까. 나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지도 못했고, 내 죄를 고백하지도 못했고, 용서를 빌지도 못했고, 하늘을 바라보며 나와 내 이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하물며, 내가 지불한 밥값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왔을 뿐, 그 출처는 어머니의 통장이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식기전에 밥을 먹어야 했다.


#4. 안녕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고 나니, 그 피해 학우가 아직 연구실에 있었다. 나는 그를 마주쳤을때 그가 오늘 노트북을 분실했다는 걸 잊고는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차 싶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내 인사를 간신히 받아줄 뿐이었다.

인간은 한 조각의 빵을 얻기 위해 긴 줄 맨 뒤에서, 하루 종일 기다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는 손쉽게 이런 저런 핑게를 대기 마련이다.


#5.언제 그러했던가

나는 오늘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도 듣고, 일도 하고, 바쁘게 보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지니, 맑고 투명하던 가을 하늘이 붉게 물들어갔다. 시간, 바람, 구름, 그리고 하루하루.

나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바람을 믿고, 구름을 믿고, 햇살을 믿고, 간신히 여기까지 살아왔다. 일상에 찌든 풍경은, 고작해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지만, 햇살이 언제 그러했던가. 별빛이 언제 그러했던가. 바람이 언제 그러했던가.

대화는 아름답다. 그리고 시간은 지루하다. 하지만, 햇살은 그렇지 않다. 별빛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바람도 그렇지 않다. 태양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머리칼을 잡아채는 바람과 함께, 사랑하는 여인의 손이라도 붙들고 안온한 평화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파도처럼 밀려가는, 그리고 다음번 파도와 맞부딧혀 산산히 부서졌다가, 다시 다음번 파도로 밀려오는, 그런 안온하고 평화로운 반복 속에서, 그렇게 살아 갈 수는 없는 걸까.

이유를 알수 없는 이유로, 울적한 마음이 되어, 저녁 내내 음악이나 들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현관문 앞에서, 집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어찌할 수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겠지.

허락만 한다면, 거적만을 걸치더라도, 바람을 맞으며, 햇살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고 싶다. 밤이면 별을 바라보고, 낮에는 잠시 더위를 피해 그늘진 곳에서, 바람을 만나고, 그냥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