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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제영 Jun 28. 2019

내면 관찰이 어려운 이유

마음언어

이번 글에서는 ‘마음언어를 배우는 방법’이자 ’명상하는 방법’이기도 한 내면 관찰에 관해 좀 더 깊이 살펴본다.


앞서 필자는 내면 관찰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26년이 걸렸다고 했다.

필자의 인지 능력도 문제였지만,  더 큰 이유는 내면 관찰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내면 관찰의 어떤 점이 그토록 어려울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내면 관찰이라는 용어가 지닌 오해의 여지부터 풀어본다.

내면 관찰은 사실 내면만 관찰하는 게 아니다.

내면 관찰은 외부 관찰을 바탕으로 확장된 행위이다.

따라서 내면 관찰의 대상 역시 외부 세계도 포함된다.

내면 관찰의 ‘내면’은 관찰의 핵심 대상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가령 당신이 외부 세계의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을 보고 마음이 반응하거나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내면 관찰의 대상은 내면의 마음이나 기억만이 아닌 관계하는 외부 대상도 포함된다.

즉  내면 관찰에는 나의 내면이 구체적으로 외부 대상의 어떤 특성에 반응하는 지를 자각(인지)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이야기이다.

단지 내면 관찰 초보자는 인지 능력 문제로 인해 외부 세계의 흔적인 과거 기억을 중심으로 관찰을 시작한다.

그래서 초보자에게는 내면 관찰이 외부 관찰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면 관찰은 외부 관찰의 확장된 행위이다.

이는 곧 내면 인식 능력은 외부 인식 능력의 확장판이라 뜻이기도 하다.


다시 내면 관찰이 왜 어려운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내면 관찰을 시작하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 생각의 문제이다.

즉 내면 관찰시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지 아니면 생각하고 있는지를 자각(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명상 전문가들조차 겪는 어려움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스스로 생각을 관찰하여 생각의 구조와 작용을 전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을 때 해결된다.


필자는 예전에 이 문제와 관련된 마음챙김 명상법에 관한 글을 SNS에서 본 적이 있다.

글쓴이는 마음챙김 명상의 ‘이름 붙여 주기’( 혹은 이름 붙이기, 영어로는 naming)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이름 붙여 주기(naming)를 매우 유용한 명상법으로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그는 영성가이자 명상가로 알려져 있다 보니, 많은 팔로우가 그 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름 붙여 주기(naming)’는 바른 명상법이 아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내면 관찰의 과정에서 누구나 두려움이나 분노 등의 감정을 인지하게 된다. 이때 인지된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되면 관찰은 중지된다. 왜냐하면,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관찰이 아닌 생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려면 어떤 과정을 거칠까? 마음은 뇌에 저장된 언어적 기억물과 비언어적 기억물을 인지한다. 이는 마음이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실제가 아닌 기억을 인지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마음이 생각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또한 이름을 붙일 경우 마음은 다양한 두려움과 분노를 세밀하게 인지(구분)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인지 수준에서 멈추게 된다. 이럴 경우 당연히 인지 발달은 불가능하다. 그 자각은 피상적인 현상 인지에 머물게 된다.  물론 일시적으로 얻는 것도 있다. 두려움과 분노로 인한 마음의 불안정성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태도가 반복되면 명상은 관찰의 가면을 쓴 ‘자기기만’이 되고, 더 심해지면 ‘자기세뇌’의 결과를 낳는다. 


이번에는 좀 더 쉬운 외부 관찰 사례를 통해  ’이름 붙여 주기’가 왜 명상법이 될 수 없는지를 살펴보자.


가령 당신이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작품을 관찰하는 것과 그 작품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적어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작품을 관찰하는 동안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 

언어가 필요한 것은 그 작품에 관한 설명서를 읽을 때이다. 혹은 그 작품에 관해 느낀 점이나 알게 된 점을 정리할 때에는 언어와 생각이 필요하다. 당신이 그 작품을 관찰하다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관찰이 아니라 이미 생각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사례도 어렵다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당신을 생각해 보자.

당신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최대한 그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

만약 음악을 듣는 과정에 언어가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생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관찰은 비언어적 행위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비언어적 행위의 본질을 잊어버린 듯하다.

그 결과 우리의 비언어적 행위는 제한된 영역에서 제한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마음이 언어의 힘에, 기억의 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내면 관찰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깨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언어 기초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JxgggJj3-a5_veqx32PAYPXEo-dHWpB

마음언어 생활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JxgggJj3-ZkcoQpZahfd9Bn0hFdJD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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