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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Oct 20. 2024

단순함과 동안거(冬安居)

요즘 생활은 매우 단순하다. 일어나서 명상하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고, 아내와 둘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어제는 자장면과 짬뽕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이런 순간이 행복하다고 아내가 얘기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을 보니 우리 삶이 참 단순하고, 동시에 단순함이 행복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큰 일 없이 또 별일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또한 동시에 큰일이건 아니면 별일이건 발생하면 발생하는 대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고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이런 삶은 단순하다. 이런 단순함이 편하다.      


단순하기 위해서는 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홀로 지내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심리적 갈증을 채우려 한다면 언젠가는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인해 힘들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진다. 남에게 의지하고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은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떠난 빈자리를 체감하며 심한 고통과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두려워 홀로 지내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사회적 고립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은 생존을 위해 함께 어울리고 협력하며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단순함이라는 단어는 참 단순하고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심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함께 어울려 지내며 발생하는 불편함을 감내하거나 별로 느끼지 않는 힘을 지녀야 단순한 삶이 가능해진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 동호회에 가입한 후 걷기 모임에 참석하기까지 1년 이상 걸린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가입 후 바로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이 참석하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낯 선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어서, 걷는 데 자신이 없어서, 낯 선 환경을 걷는 것이 불편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해서, 남에게 폐를 끼칠 까 두려워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살고 있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며 타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거나, 자신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쉽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눈팅을 하며 동호회의 글을 읽거나 사진을 보며 참석할 다짐을 반복하며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참석한다.    

  

사람의 모습은 동호회 활동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홀로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걸을 때도 혼자 조용히 걷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거부하거나 피하거나 불편함을 노출한다. 반면 누군가와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상대방이 거부감을 표현해도 개의치 않는다. 홀로 지내거나 조용히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다. 나 역시 동호회 가입 후 한 동안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해서 뒤에서 조용히 걸었던 적이 있다.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는 것이 싫고 불편해서였다. 혼자 걷기에는 길도 잘 몰랐고, 늘 다니던 길만 걷다 보니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없어서 동호회에 가입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나에게 ‘닌자’라는 별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만큼 말도 없었고, 나의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걸었다. 근데 지금은 말 많은 수다꾼이 되었고 길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때로는 홀로 걷고, 때로는 함께 걷는다. 홀로 몇 시간을 걸어도 지루한지도 모르고, 함께 몇 시간을 걸어도 전혀 불편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겁게 걷고 있다. 홀로 걷고 서는 법을 체득했고, 동시에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에는 people walker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홀로 걷는 것이 두렵지만 걷고 싶은 사람들을 산책시켜 주는 산책 동반자를 의미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며 동시에 무리에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한다. people walker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다. 걷기 학교에서 내년부터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마음챙김 8주 프로그램’이다. 걷고는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챙김 걷기를 안내해서 이들이 세상 속으로 나와 함께 어울리며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오늘 아침 명상을 마친 후 동안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밴드를 운영하며 과연 나는 홀로 그리고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은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가끔 과음을 한다. 분위기에 취해 또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도 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과음하고 있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홀로 그리고 함께 어울리며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동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안거는 불교에서 음력 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 3개월간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11월 15일부터 내년 2월 12일까지가 동안거 기간이다. 안거는 철저하게 홀로 지내는 시간이다. 함께 어울리되 늘 화두나 명상의 주제와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스님들처럼 선방에 머물며 하루 15시간 이상 정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서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지켜나가면 될 것 같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고민해 가며 동안거 규칙을 만들어보자. 일상을 살아가면서 진행해야 하니 나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규칙을 정하면 된다. 사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도 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이다. 특히 금주 같은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자신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안거를 통해 홀로 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수처작주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안거가 필요하다. 결국 안거는 홀로서기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즉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방법이 바로 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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