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고 Nov 06. 2024

위빠사나 수행

동안거 결제일이 15일이니 한 열흘 정도 남았다. 만날 사람들은 만났고, 술 한잔 할 사람들과도 한잔 했다. 오늘 저녁에 한 친구를 만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면접 업무 볼 일이 있어서 지방에 다녀와야 한다. 이 업무는 안거 중에도 계속할 계획이다. 또한 걷기학교 밴드 활동도 계속 이어서 진행한다. 다만 안거 기간 중 개인적인 모임을 하지 않고 가능하면 홀로 수행하며 차분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요즘 ‘한국 마하시 선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법문을 듣고 있다. 30여분 강의가 10여 편 정리되어 있다. 두 강의를 들었는데 약 40년 전 송광사에서 수행했던 방법이다. 공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미얀마에는 수행 센터가 여려 곳 있다. 그중 파욱 센터, 고엥카 센터, 마하시 센터 등이 많이 알려진 수행처다. 송광사에서 위빠사나를 수행할 때는 익숙하지 않은 수행법이기에 과연 이것이 공부가 될까라는 의문만 품고 4박 5일을 보내고 왔다. 약 15년 전쯤에 파욱 큰스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2박 3일간 집중수행을 지도하신 적이 있다. 인연이 닿아 참석해서 지도를 받았지만, 수행의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냥 앉았다 왔다는 생각만 든다. 약 5년 전쯤에 고엥카 한국 분원인 담마 코리아에서 10일간 진행하는 집중수행을 다녀왔다. 조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이제야 그 수행법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욱 센터에서는 사마타-위빠사나를 수행한다. 호흡에 집중하여 니미타를 형성한 후에 공부를 이어간다. 고엥카 센터에서는 아나빠나-위빠사나를 수행한다. 호흡의 접점을 찾아 집중한 후,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개발해서 정신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몸의 감각을 느끼며 감각의 무상함을 관찰하는 수행을 한다. 마하시 선원에서는 들숨시 배가 올라오고, 날숨시 배가 꺼지는 것을 마음의 닻으로 삼는다. 좌선시 발생하는 모든 정신 작용과 신체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명칭을 붙인 후 그 작용이 사라지면 다시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한다. 매 순간 발생하는 모든 작용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새김’을 한다. ‘마음챙김’을 마하시 선원에서는 ‘새김’으로 부른다. (이 세 센터의 수행법에 대한 견해는 저의 소견일 뿐입니다. 잘못된 것은 가르쳐 주시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센터에서 진행하는 집중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동안거 기간에는 마하시 선원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수행을 지도해 주실 스승님이 안 계시기에 어떤 기준점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수행할 수 있기에 그 법문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수행하면 된다. 혼자 자신을 믿고 마음공부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참선 공부나 경전 공부 모두 마찬가지다. 혼자 공부하면 독선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자신이 조금 견해가 생겼다고 착각하며 그 견해에 빠지면 공부는 고사하고 오히려 독선에 빠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마하시 선원과 인연이 닿았고, 덕분에 위빠사나 강의를 스승 삼아 공부를 이어가면 될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아직 열흘 정도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간 법문 강의를 모두 들은 후 안거를 시작하고, 안거 기간 동안 반복해서 들으며 공부를 이어가려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세수만 한 후에 좌복에 앉는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핸드폰은 무음으로 한 후 좌선을 시작한다. 늘 호흡을 코 주변의 감각을 관찰하며 하다가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려니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고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40년 전에 송광사에서 배의 관찰과 행선했던 경험이 몸에 남아있었는지 금방 익숙해졌다. 들숨에 배의 일어남을 ‘일어남’이라고 명칭 붙인 후 바라본다. 날숨에 ‘사라짐’이라고 명칭 부른 후 바라본다. 이 방법을 계속해서 진행한다. 손의 감각이 느껴진다. 손이 확장되고 열감이 느껴진다. ‘손의 확장’, ‘손의 열감’이라는 명칭을 붙인 후 그 감각을 느낀다. 제법 오랫동안 유지되다 발이 저려온다. ‘발 저림’이라는 명칭을 붙인 후 감각을 느낀다. 감각이 사라지면 다시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한다. 생각이 떠오른다. 떠오른 생각에 명칭을 붙인 후 호흡한다. 다른 생각으로 생각이 변하면 그 변한 생각에 명칭을 붙이며 호흡한다. 허리가 아파온다. 허리의 ‘통증’을 명칭 붙이며 느낀다. 법문에서 정신현상과 몸의 감각과 ‘새김’이 마치 찰흙이 벽에 붙은 것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있다. 생각, 감정, 감각을 ‘새김’해서 그것들과 분리되지 말라고 이해하고 있다. 단지 생각, 감정, 감각만 느끼고 새기면 된다. 자신의 감정과 지난 기억과 경험이라는 오염된 생각이 따라붙으면 안 된다. 단지 새기고 느낄 뿐이다. 생각보다 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서 걸을 방향을 정한 후 15분 간 행선을 한다. 좁은 공간이기에 아주 천천히 발을 올림, 이동함, 내림이라는 세 가지 동작으로 나눠 행선을 한다. 허리는 세우고 시선은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을 바라보고, 손은 뒷짐을 지고, 발의 감각에 집중하며 세 가지 동작을 각각 명칭 붙이며 한 동작, 한 동작 이어간다. 15분도 금방 지나간다. 행선을 마친 후 스트레칭과 푸시업 40회, 스쾃 50회를 마치고 나니 8시가 된다. 샤워 후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는 과일과 야채로 먹은 지 벌써 2년 이상이 지나간다. 과일을 먹으며 과즙을 음미한다. 먹기 전 식사를 한다는 ‘새김’을 한 후 식사를 하고, 음식을 씹으며 씹는 과정을 ‘새김’하고 먹으니 과즙이 입안 가득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생각이 올라온다. 생각에 명칭을 붙이면 사라진다.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한다.   

   

아침 식사 후 신문을 보고 책상에 9시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이 루틴은 계속 이어가고 싶지만, 딸네 머물거나 외부 활동이 있을 때는 유연하게 대처할 생각이다. 다만 좌선 1시간, 행선 또는 걷기 1시간, 그리고 글쓰기, 즉 안거 일기(걷기 일기)는 매일 하려고 한다. 사적인 모임을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할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만 하고 남은 시간에는 조용히 안거 하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지내고 싶다. 아침에 좌선을 하는데 TV나 영화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다. 뉴스 외의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보지 않은 것이 좋을 것 같다.

     

안거를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글을 써서 알리니 주변에서 이 사실을 인식하고 안거 전에 보자는 분들도 있고,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아쉬움을 전해 준 분들도 있다. 모두 공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다. 불법 인연을 만나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고, 주변에 좋은 도반들이 도움을 주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시절 인연에 맞춰 ‘한국 마하시 선원’을 알게 되었고, 위빠사나 수행법이 정리된 법문을 만나게 된 것도 참 귀한 인연이다. 공부 인연은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간 공부를 제대로 해 오지 못한 잘못이 크다. 삼보에 귀의하고, 참회의 시간을 갖고, 공부를 잘 이어가길 진심으로 발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안거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