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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Nov 10. 2024

아침 일기

어제 약 22km의 성곽길을 걸었다. 몇 년 전에 걸을 때는 꽤 힘들었고, 뭔가 쫓기는 듯한 느낌으로 걸었는데, 어제는 매우 편안하게 걸었다. 중간에 식당에 들어가 점심 식사도 하고 멋진 커피숍에서 차도 마시며 여유롭게 걸었는데 실제 걷는 시간은 지난번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빨리 가기 위해 차를 급히 몰아도 여유롭게 운전하는 사람과 도착 시간에 별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이상한 일이다. 바쁜 마음은 걸음을 재촉하고, 여유로운 마음은 걸음을 자신의 몸에 맡긴다. 몸이 걷는 것이지 마음이 걷는 것은 아니다. 바쁜 마음은 그 마음으로 인해 몸만 더 힘들게 만든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먼 길도, 또 급한 일이 있어도 서두르는 것과 여유로운 것과 결과치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여유롭게 걷고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안거 전 위빠사나 수행법 강의를 들으며 몸을 익숙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 마하시 선원의 지침에 따라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담마 코리아 10일간 집중 수행 참가 접수 할 때 담마 코리아의 수행법에 따라 수행하며 이전에 자신이 했던 모든 수행법은 이 기간 동안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각 수행처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규율이 있다. 수많은 방법으로 수많은 수행자를 지도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잘 다듬어진 구조화된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수행처의 원칙과 방법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공부에 도움이 된다. 그간 자신이 해왔던 수행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참가 시 수행처의 지도법을 따른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한 가지 수행법을 올바르게 익힐 수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각자 자신의 체력과 성향에 맞춰 원하는 코스를 걸으며 정상에 도달한다. 이 길을 걷다가 저 길을 걷는다면 결론적으로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도착하더라도 매우 늦게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 수행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안거 기간에는 마하시 선원의 수행법을 따라 하기로 결정했고, 법문을 들으며 수행법을 익히고 있다.      


어제 성곽길을 걸으며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질 때 왼발, 오른발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걸었다. 걷는 발과 명칭이 일치하며 걷다 보면 생각이 사라진다. 가끔 왼발로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오른발을 부르기도 한다. 깜짝 놀라며 다시 발과 명칭을 일치하도록 만든다. 이런 일이 서너 번 발생했다. 처음에는 과연 행동과 명칭이 일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때로는 소리를 듣는다. 새소리가 정겹다. 소리를 듣다 풍광을 쳐다본다.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시내 풍경은 웅장하다. 보기(듣기) 전에 본(듣는) 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보고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보고 듣고는 정겹고 웅장하다는 느낌만 받았다. 단순히 보고 들으면 된다. 감정과 느낌 없이 그냥 바라보고 들어야 한다. 감정과 느낌은 다른 잡념과 망상을 불러들인다. 이런 실수를 통해 서서히 위빠사나 수행법을 익히고 있다.     

 

한 가지 행동을 하기 전 그 행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확립한다. 그리고 행동을 한다. 그러면  행동에 따른 동작을 알아차리고 그에 따른 소리도 듣게 된다.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있다. 예를 들면 옷을 입으며 입겠다는 생각을 하고 입는다. 오른팔을 옷에 넣으며 팔과 옷의 감촉을 느끼고 동시에 팔이 옷에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한 가지 동작에 여러 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몸의 작용과 정신 작용이 만들어지고 일치한다. 그 현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 현상을 알아차린다. 한 가지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이동할 때 이동한다는 생각을 확립한 후 이동하는 동작을 가능하면 세분해서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그냥 노력만 하고 있지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소리와 감촉에 조금은 민감해지고 있다. 매 순간 모든 동작과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한다면 생각이 들어 설 틈은 저절로 사라진다.      


길을 걸으며 길벗과 다양한 얘기를 나눈다. 생각(감정)이 떠오를 때 감각을 느끼려고 하는 노력은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를 한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를 때, 그것들을 따라가면 그 생각은 확대되고 그것을 불러일으킨 사람에 대한 감정도 강화된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자신의 감정을 더욱 격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심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감정(생각)과 감각은 제로섬 게임과 같다. 감정과 감각의 합은 하나의 세상이다. 감정의 크기가 커질수록 감각의 세상은 줄어들고, 그 반대도 적용된다. 따라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면 감정의 크기는 줄어들고 나아가 감각 집중이 잘 되며 감정은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면 감정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서 감각을 느낄 틈조차 생기지 않게 된다. 또한 자극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두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데, 자극을 준 사람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추면 불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반응을 알아차리고 감각 집중을 통해 반응의 크기를 줄여나갈 수 있다. 또한 발생한  반응에 집중하며 반응을 변화시켜서 감정과 생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빨리 알아차리고 걷는 행위에 집중하면 된다. 왼발, 오른발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걸으면 된다. 또는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며 걸으면 된다. 또는 걷는 몸동작 전체를 마음속으로 스캔하듯 알아차리며 걸으면 된다.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다시 부드럽게 걷고 있는 행동, 자세, 걸으며 느끼는 감각으로 돌아오면 된다. 마음챙김 걷기란 아주 쉬운 수행법이다. 다만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또한 수행의 원리를 알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수행의 원리는 수행처의 법문과 그 법문에 따른 방법으로 직접 수행하며 스스로 확인하고 깨우치게 된다. 수행의 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행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담마 코리아에서도 마지막 날 법문에 하루도 빠지지 말고 꾸준히 수행하라고 했고, 한국 마하시 선원에서도 매일 꾸준히 수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절 마당에는 잡초가 많아 매일 청소를 하고 풀을 뽑는다. 하루만 뽑지 않아도 금방 자라서 마당이 지저분해진다. 마음 마당에도 매일 잡초가 자란다. 수행은 잡초(번뇌)를 뽑는 행위다. 잡초를 하루라도 뽑지 않으면 마음 밭은 금방 지저분해지고 어질러진다. 수행은 아침 마당을 쓰는 것과 같다.    

  

조금 후면 아내는 처갓집에 간다. 아내가 떠난 후 집은 수행처가 된다. 이 글을 쓴 후 오늘 수행을 시작하려 한다. 경행 한 시간과 좌선 한 시간. 오늘은 시간에 쫓길 일도 없으니 여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없는 이런 날이 오히려 고맙고 편안하다. 모든 중생의 건강과 행복과 평온을 기원하며 수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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