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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Nov 11. 2024

수행과 체력관리

그저께 한양 성곽길 22km를 걸었다. 걸을 때는 걷는 즐거움에 빠져 힘든 줄 몰랐는데, 그 여파가 이틀 정도 이어진다. 당일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많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 아침에 평상시처럼 일어나 경행을 한 시간 했다. 법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15분간은 왼발, 오른발에 새김 하며 걸었다. 이후 15분간은 발을 들고 놓는 ‘듦’과 ‘놓음’을 새김 하며 걸었다. 그리고 30분 간은 세 단계로 구분해서 걸었다. ‘듦-감(이동)-놓음’을 새김 하며 걸었다. 한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경행을 하는데 졸음이 몰려온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되어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피곤함이 몰려와서 졸음이 찾아온 것이다. 경행 마친 후 좌선을 하는 데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몰려오고 몸도 가만히 두기 힘들 정도로 불편해진다. 토요일 많이 걸은 피로감이 일요일까지 남아있다. 체력 회복 시간이 많이 느려지고 있다. 당연한 노화 현상이니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이런 체력 상황을 늘 파악하며 수행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과한 운동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경행을 하는데 종아리 느낌이 딱딱하다. 그리고 가끔 발이 무거워진다. 발에 집중하며 걸으며 나타난 느낌이다. 방향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할 때 의도를 확인하고 자세를 트는데 허벅지 근육이 먼저 반응한다. 방향을 바꾸는데 발 보다 허벅지 근육이 먼저 움직인다. 첫 단계, 두 번째 단계, 세 번째 단계로 들어가면서 보행 속도는 느려지고 알아차리는 발의 감각은 점점 더 미세해진다. 발바닥의 느낌도 거실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어느 쪽은 조금 더 따뜻하고, 어느 쪽은 조금 차갑다. 그 감각을 느끼며 걷는다.      


좌선을 하기 위해 앉는데, 경행에서 좌선으로 바뀌는 과정에 삼매가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하지만 쉽게 깨진다. 경행에서 앉는 자세로 바꾸며 동작 하나하나 새김 하는 것이 잘 되지 않고, 새김이 연결되지 않고 끊긴다. 그러려니 하고 앉아서 좌선을 한다. 들숨과 날숨에 따른 배의 ‘부풂-꺼짐’을 새김 하며 호흡한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은데 몸의 피곤함이 몰려오며 앉아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25분 정도 억지로 버티다 일어났다. 더 이상 앉아있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몰려오기에 자려고 누웠는데 아내가 전화로 집에 가구가 도착하니 잘 받아놓으라고 한다. 잠도 마음대로 잘 수 없다. 한 통화로 그치지 않고 카톡과 전화로 상황을 중계하며 이런저런 부탁인지 지시를 내린다. 좌선도 잘 되지 않고, 잠도 원하는 대로 잘 수 없게 되자 은근히 짜증이 올라오려 한다. 아내의 말씀이 모두 끝나고 이제 가구만 받으면 된다. 마지막 통화에서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 것이 미안하다. 잠시 앉아 짜증 난 상황을 돌아본다. 왜 짜증이 올라왔을까? 자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은 상황 때문이다. 자고 싶은 마음은 나의 욕심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난 것은 감정이 표출된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 것은 굳이 짜증 날 일이 아닌 상황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해 본다. 욕심과 감정이 과연 나일까? 잠이 부족해서 몸이 피곤했을 뿐이다. 게다가 잠을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는 상황이니 짜증이 난 것이다. 욕심과 감정은 상황에 따른, 즉 자극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 몸이 있기에 나타난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외부 환경에 자극을 받으면 반응이 일어난다. 자극과 반응은 그저 자극과 반응일 뿐 그 자체는 어떤 감정이 없고 또한 그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반응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발생한다. 우리는 그 자극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나’가 받고, 그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자극에 대한 나름 합리적인 대응을 한다고 착각하며 자신의 에고를 강화하고 지키려 한다. 따라서 몸이 피곤하면 ‘나’가 피곤한 것이고, 짜증이 나면 ‘나’가 짜증 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나’는 몸을 지니고는 있지만, 몸이 ‘나’는 아니다. 몸을 지닌 ‘나’는 감정과 욕구와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바로 ‘나’는 아니다. 자신과 감정, 욕구, 생각, 느낌과 '나'를 동일시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행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습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이다. 습관이 발동할 때 빨리 알아차리고 수행의 주제로 돌아오면 된다. 익숙하지 않기에 잘 되지 않을 뿐이다. 반복적인 수행이 필요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 부분의 감각을 느낀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다. 손바닥이 간지럽다. 그 간지러움을 느끼며 다시 글을 쓴다. 신체 작용과 정신작용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몸이 여기 있으면서 마음이 밖에 있다면 이는 이미 분리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면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이다. 몸과 마음의 분리는 우리를 피폐하게 만든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이 일치한 생활을 한다면 모든 불만과 불평은 사라진다. 통화가 끝난 후 아내의 통화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과거의 일이 지금의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금-여기’는 매우 짧은 한 찰나에 불과하다. 그 순간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미래는 내가 앞당겨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불편함과 번뇌는 ‘지금-여기’를 떠나 있기에 만들어진다. 수행은 바로 ‘지금-여기’에 머무는 연습이다. ‘지금-여기’ 외에 다른 세상은 없다. 그리고 ‘지금-여기’는 이미 완벽하다.      


오늘 아침에는 체력이 회복되었는지 한 시간 좌선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배의 ‘부풂-꺼짐’을 관찰하는데 어깨 윗부분이 가렵다. ‘가려움’을 반복해서 명칭을 부르고 사라지면 다시 배의 감각으로 돌아온다. 잠시 생각이 해파랑길에 머문다. ‘해파랑길’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명칭을 부른 후 사라지면 다시 명상의 대상에 집중한다. 다리가 조금 저려오기도 하고, 한 시간이 꽤 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늘 쓸 글 내용을 마음속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감각과 생각에 오랫동안 끌려다니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어서 배의 감각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배의 감각은 마음의 닻이 된다. 감각과 생각에 흔들릴 때마다 알아차리고 마음의 닻인 배의 감각을 되찾으며 중심을 잡는다. 이번 안거 기간 내내 할 일이고, 동시에 평생 해 나갈 일이다. 그 외에 별다른 지혜로운 삶의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아침에 좌선을 한 시간 한 후에 아내가 아침 식사를 차리는 동안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마쳤다. 아내가 집에 머물 때 경행을 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정신 사납다며 가만히 있으라 할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행 원칙을 세우고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원칙에 묶여 주변 상황과 동떨어진 언행을 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며 수행을 이어가면 된다. 아내의 불편함을 미리 알아차리고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것이 참다운 수행이다. 마음공부의 목적은 나만의 행복추구가 아니다. 나와 주변 모두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마음공부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중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의 수행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다면 수행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수행이 잘 되어 간다는 것을 가장 먼저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고 가까운 친구들이다.      


수행이 일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이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집과 독선만 키우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걷기를 좋아해서 걷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건강 상태를 파악해서 무리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 특히 동안거 기간에는  몸 상태를 수행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늘 관리해야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외부 모임을 자제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밖으로 많이 나돌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이는 바로 수행을 하는데 장애로 작용한다. 자신의 몸과 건강 관리, 그리고 수행 규칙은 안거를 원만하게 회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일이다. 오늘 저녁 모임이 있다. 안거 전 마지막 모임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안거 준비를 차분히 해 나가자. 어쩌면 이미 안거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안거를 위한 주변 정리를 하고, 습관과 루틴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수행 지침이 되는 법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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