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지난주는 채용 면접 업무를 진행하느라 일기 쓸 시간이 없었다. 아침 5시 반경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한 후 면접장으로 이동하고, 면접 마친 후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쯤이다. 식사 후 휴식을 취한 뒤 밤 10시경 잠에 든다. 일주일 내내 반복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면접 마치고 토요일에는 인제천리길을 다녀왔다. 길을 걸으며 쉰다. 특히 인제천리길의 임도길은 세상과 동떨어진 길이고 세속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길이어서 심신을 쉬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고요한 임도를 걸으며 세상의 피로를 씻어낸다.
동안거 기간인 지난 일주일 동안 수행을 제대로 했는지 점검해 본다. 수행을 멈추지는 않았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서 또 역사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경행을 한다. 점심 식사 이후 남는 시간에는 면접장 내부를 걸으며 경행을 한다. 전철로 약 1시간 50분을 타고 간다. 전철 안은 배의 꺼짐과 부풂을 관찰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른 시간에 전철 안에서 조용히 좌선 수행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조자 없다. 내가 앉아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관심도 없고, 설사 관삼을 갖고 나를 지켜본다고 해도 내가 조는지 좌선을 하는지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아침 전철 안은 비교적 조용하다. 사람들은 각자 핸드폰을 보거나 졸며 출근한다. 나는 눈을 감고 배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수행을 할 수 있다.
팔 굽혀 펴기와 스쾃은 아침에 시간이 나면 집에서 하고 나가거나, 아니면 면접장에 도착해서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한다. 어느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니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쾃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나의 행동이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나의 건강을 챙기는 일은 내가 할 일이고,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다소 이상하게 보여도 상관없다. 지하철에서도 에스컬레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는 편이다. 굳이 시간과 돈을 내어 헬스장에 갈 필요가 없다. 일상 속 수행이 있듯이, 일상 속 운동도 있다. 모두 마음먹기 나름이다.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목, 금요일은 조금 더 일찍 서둘러 나간다. 전철 시간의 간격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금요일에는 전철역 개찰구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살펴보니 임시 지하철 운행시간표다. 나도 사진을 찍어 보관했다. 목요일 저녁에 전철을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때는 임시 운행 시간표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노조 중 누구에게 일반 시민의 불편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분명히 시민들은 불편하다. 이유는 전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임을 질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 잘못에 대한 불편은 온 국민이 안고 살아가고 있고 정작 책임을 지는 사람도, 처벌받는 사람도 없다. 참 이상한 세상이다.
이번에 진행한 면접은 대부분 시설 관리자 채용을 위한 면접이다. 공원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도서관 청소를 하거나, 둘레길 정비 및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인원을 채용하는 일이다. 길을 자주 걷는 사람으로서 둘레길이나 한강공원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깨끗한 환경이 때로는 놀랍기도 하다. 이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을 만나 면접을 진행하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그분들의 건강한 웃음과 소박한 말투, 그리고 건강한 모습을 보며 직업의 귀천은 따로 없고,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직업과 자신의 귀천이 정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네, 제가 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어넘긴다고 한다. 참으면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인데 조금 더 한다고 문제 될 일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좋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가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들의 표정을 보면 모두 건강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번에 면접 시 만난 분들이 모두 달인들이다. 그들의 건강한 웃음과 삶의 태도를 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요즘 나라는 시끄럽다.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며 절망하고, 면접을 진행하며 응시자들의 건강한 웃음과 삶의 태도를 보며 희망을 본다. 우리나라는 정치와는 무관한 일반 서민의 건강한 노동과 사람들 간의 따뜻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웃음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우리와는 다른 인종인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로는 떠들면서 정작 자신의 권력욕만 채우고 있다. 제발 부탁하건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제발 건강한 일반 서민을 정치 싸움에 끌어들이지 말라.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주인공은 매일 상수리 열매를 100개씩 심는다. 숲이 무성해지자 정치인들과 정부 관리들이 그 숲에 들어와 개발을 떠들고 숲 관리를 떠들어 댄다. 전쟁 중에는 물자 조달을 위해 벌목을 한다. 정치인들의 쓸데없는 말과 전쟁 등 아수라장 속에서도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심는다. 그들이 죽고, 전쟁이 끝난 후 마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사람들이 몰려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시설 관리자는 화장실과 시설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다. 노동자는 삶의 터전에서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다. 나는 매일 경행과 좌선을 하며, 그리고 걷고 글을 쓰며 나만의 나무를 심는다. 동안거를 하는 이유도 바로 나만의 나무를 심기 위한 작업이다. 안거를 시작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시작 당시의 마음가짐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시작 후 지금까지 금주는 지켰고, 경행과 좌선도 빠지지 않고 하고는 있다. 겉으로는 잘하고 있는 거 같지만 마음가짐은 많이 흐트러진 느낌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참모습이 아니다. 안거는 몸과 마음의 쉼이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이 분주하다. 그러니 안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심초심(禪心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참선하는 사람의 마음은 늘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처음 반야심경을 독경할 때, 처음 선방에 앉을 때, 처음 사랑을 할 때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선심초심이다. 안거를 시작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려 노력한다.
아침 6시 반경 아내는 동네 지인과 함께 걸으러 나간다. 아내가 나가는 시간이 수행 시간이다. 경행을 30분간 한다. 경행을 하는데 발바닥이 부드럽고 마치 동물의 발바닥처럼 쿠션감이 느껴진다. 발바닥은 늘 딱딱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발바닥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경행을 한다. 생각이 올라오고 목 주변이 간지럽다. 잠시 올라온 생각과 간지러움을 명칭 붙이며 관찰한다. 그리고 다시 경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1단계와 3단계로 경행을 한다. 2단계는 건너뛰었다. 굳이 2단계 필요 없이 3단계를 진행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좌선을 30분간 한다. 차분하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하지 않아 울린다. 앞으로는 무음으로 한 후 좌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좌선을 마치고 신문을 본다. 오랜만에 보는 신문이다. 그간 일부러 뉴스와 신문을 멀리했다. 보고 싶지 않은 세상사 시끄러운 소리에 귀와 눈을 닫고 살았다. 앞으로도 세상사 신경 쓰지 않고 나의 나무를 심으며 살아가고 싶다. 아내는 딸네 가는 준비로 분주하고,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가 나무를 심고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