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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23. 2024

길을 찾는 방법

옛 말에 ‘한 우물을 파라’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하면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축구의 박지성,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골프의 박세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자신과 일이 하나가 되는 사람들이다. 가끔 자문해 본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경력 관리도 잘 못했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도 못했고,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하지도 못했다. 나이는 6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때로는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무언가로 또는 어떤 일로라도 자신을 정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제대 후 주간에 직장생활, 야간에 대학을 다니며 싱가포르 관광청(STPB) 서울 홍보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졸업 후 신라호텔 판매기획과 에서 2년 반 정도 근무 후에 American Express 카드 회사로 이직하여 마케팅 업무를 했다. 5년 넘게 근무한 후 지인의 투자로 사무용 가구와 사무실 인테리어 사업을 운영했다. 약 20년 정도 이 일을 했다. 투자자와 마찰로 헤어졌고, 다른 투자자와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다시 헤어졌다. 법인을 정리한 후 힘든 시간을 보냈고, 다른 인테리어 회사의 프리랜서 영업을 하며 빚을 갚고 이 분야를 떠났다. 그리고 프리랜서 헤드헌터로 활동하며 대학원에 입학해서 불교상담을 전공했다.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1,000곳 이상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나이 많은 남성이고, 유료 상담 센터 경력이 없는 나를 채용해 주는 상담 센터는 없었다. 또 한 번 좌절의 시간이 찾아왔다. 상담 봉사 활동을 2년 이상 한 후 근로복지공단 EAP 상담사로 3년 정도, 서울 심리지원센터에서 3년 정도 상담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헤드헌터 경력 덕분에 지자체 채용 면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개인상담을 한 사례 진행하고 있고, 상담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걷고의 걷기 학교’를 운영하며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 챙김 걷기’를 진행하고 있고, 4월 말부터 코리아둘레길 중 해파랑길 이어 걷기를 시작한다.


지난 경력을 돌이켜보니 일관성이 없다. 외국 관광청, 호텔, 인테리어 회사, 헤드헌팅 회사에 근무했다. 어떤 공통점도 없는 분야에서 근무해 왔다.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그 이유를 가끔 생각해 본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나의 길을 찾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도 아니고 돈벌이만 찾아 나섰다. 상담 공부를 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내면의 힘을 조금씩 키울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걷기다. 걷기를 하며 먼저 몸이 회복되었고, 이 덕분에 정신과 마음도 회복되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걷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상담심리사다. 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걷기, 글쓰기, 상담심리사라는 세 단어의 순서도 참 기가 막히다. 내가 좋아하는 순서다. 걷기를 가장 좋아하고, 그다음이 글쓰기이고, 그다음이 상담이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행복이고, 그 길이 자신의 길이고, 소명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많은 길을 걸었지만, 발에 물집이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 오래 걸울 수 있다. 많이 걸으면 몸은 피곤하지만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된다. 마치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또한 걷기를 통해 할 일을 하라는 미션이 주어진 것 같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하고 느낀 점을 글로 정리한다. 그리고 지금은 걷기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힘들게 공부한 상담은 돈벌이 수단이 아닌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상담 봉사 활동을 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결국 걷기, 글 쓰기, 상담, 이 세 가지가 나이고 나의 할 일이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빙빙 돌며 헤매지 말아야 하고,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더욱 안 되며, 이쪽이든 저쪽이든 언제나 같은 쪽으로 최대한 똑바로 걸어야 하고, 사소한 이유로 길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오직 우연이 그 길을 선택하게 됐을지라도. 이 방법으로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딘가 끝에는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아마 숲 속 한가운데보다는 나을 것이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본문 중)


이 글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나의 삶이 바뀌었을까? 어쩌면 이 글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글이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나이가 되고, 그간 살아온 수많은 상황과 결정을 내린 후에야 이 글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잃었을 때 머물지 말라는 말은 움직임을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할 일을 찾고 비록 그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같은 쪽으로 똑바로 걸으라는 의미는 쉽게 타협하거나 편안한 길을 가지 말고 주어진 또는 정한 길로 가라는 의미고, 그 길이 자신과 주변에 도움이 되는 길을 가라는 의미다. 길을 바꾸지 말라는 것은 길이 비록 힘들고 주변 상황이 바뀌어도 뜻을 굽히지 말라는 의미다. 이런 방식으로 가다 보면 자신의 의도한 길과는 다른 길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는 자신의 의도나 목적을 내려놓고 길이 이끄는 대로 가라는 의미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길이 바로 자신의 길이 될 수도 있다.


그간 비록 경력 관리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일관성 없는 일을 해오고, 돈벌이에만 급급하게 살아왔지만, 이 과정이 바로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신의 뜻일 수도 있다. 내게는 비록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런 과정이 있기에 지금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이 바로 걷기, 글쓰기, 그리고 상담이다. 참 별거 없다. 힘들게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의 길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티베트의 고승인 밀라레파는 스승으로부터 참기 힘든 과정을 겪어낸다. 흑마술로 많은 사람을 죽인 업보를 닦아내기 위한 스승의 배려이지만, 밀라레파는 힘든 시간을 버텨낸 후에야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네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 사는 게 별일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미움과 원망도 사라지고, 욕심과 어리석음도 사라지고, 고마움과 연민과 평온한 마음만 남게 된다. 삶의 과정의 수많은 고통과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바로 위에 인용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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