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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파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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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28. 2024

해파랑길 1회 차 후기

길은 수행이다

참석자: 걷자님, 권유진님, 렛고님, 자스민님, 아리님, 범일님, 걷고 (총 7명)

날짜: 2024년 4월 25일 ~ 2024년 4월 27일

거리 및 코스 : 약 67km, 해파랑길 1코스 ~ 4코스 (부산 오륙도에서 진하해변까지)     


지금 시간이 오전 5시. 어젯밤에 10시경 잠에 들어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났으니 7시간은 푹 잤다. 몸은 더 자고 싶은데 정신은 말짱하다.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느낀 진한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후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많은 길을 걸었고, 진행자로 길 안내를 해왔지만 이번 길에 대한 추억은 꽤 오랜 기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가끔 지치거나 의기소침할 때 이 추억을 꺼내어 보며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며 참석자들이 모두 좋아해서 기분이 좋다고 얘기했다. 여행이 어땠는지 아내가 묻기 전에 먼저 혼잣말하듯 던진 말이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길인데, 또 내가 좋아서 걸을 길인데, 함께 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 더욱더 기쁘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의 기쁨에 더해진다. 나의 즐거움이 그들에게도 같은 느낌을 주리라 믿는다. 각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서로에게 전달되어 기쁜 감정이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냥 너무 좋았다.’이다. 다른 표현은 모두 사족이다.     

이번 해파랑길을 시작하며 또 첫 길을 기획하며 과연 우리가 모두 이 길을 완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하루 20km 정도를 걷는 것과, 삼일 내내 20km 이상을 매일 걷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번 참석자들 대부분이 하루에 20km 또는 10km 내외 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던 경험은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3일 내내 오랜 시간 먼 거리를 걸었던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한번 내려가기 쉬운 길이 아니기에 조금 욕심을 내어 코스를 기획했다. 나의 의문이 사라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걷는 속도도 좋고, 걷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를 하고, 정성껏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먹고, 처음 만난 사람들도 마치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이번 여행의 멋진 성공을 가늠할 수 있었다. 덕분에 2박 3일간 67km, 해파랑길 1코스에서 4코스까지 완벽하게 완보를 할 수 있었다. 멋진 여정의 감동이 지금도 잔잔하게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고, 이런 파문은 바로 다음 길을 준비하게 만든다. 힘듦과 즐거움, 해냈다는 뿌듯함, 서로에 대한 감사함, 멋진 대화와 함께 한 추억, 개인에서 팀이 되어가는 멋진 과정, 헤어짐이 아쉬운 안타까운 마음, 다음에 함께 걷자는 다짐 등 종합선물 세트 같은 멋진 여정이었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길동무의 모습을 잠시 그려본다. 물집과 통증으로 인해 비록 함께 완보하지는 못했지만 도착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해 준 범일님.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평생 20km 이상 걸어본 경험이 없는 자스민님은 비록 물집은 생겼지만 끝까지 완보하겠다며 투혼을 보여주었다. 애니어그램으로 우리의 성향을 알려주겠다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공유해 주는 고마운 자스민님. 다리 뒷부분의 통증으로 절룩거리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주변을 두루 살피는 마음 따뜻한 렛고님.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그 안에 잠재된 큰 산이 느껴진다. 큰 수술을 마친 후 건강 회복을 위해 늘 열심히 걷는다는 권유진님의 여유로운 발걸음과 표정은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표정과 몸짓 모두 무척 안정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닉네임을 ‘걷자’로 바꾸며 걷기의 즐거움을 체감하고 걷기 전도사가 된 걷자님. 늘 미소를 유지하고 힘들어도 내색조차 하지 않고 밝은 리액션으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준 든든한 길동무다. 늘 한 발 앞서 움직이며 필요한 일들을 상황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해 주고 문제 해결사로 길동무들을 챙겨주는 고마운 아리님. 이 글을 쓰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여준 행동과 배려 깊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떠오른다. 비록 처음 함께 한 여정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팀이 되었다.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마치 매우 어리숙한 촌사람처럼 허둥지둥하면서도 내내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파랑길 안내소에서 수첩도 사고, 지도도 챙기며 마음은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바다를 등지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이 여정의 시작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비록 두루누비 어플과 길과의 엇갈린 상황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긴 했지만 이 또한 추억이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한 일종의 신고식이다. 해안가 절벽에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본다. 자유를 느낀다. 저 멀리 보이는 끝없는 바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말없이 유유히 흐른다. 때로는 거친 파도로 성질을 내기도 하지만, 이는 겉에 드러난 일순간의 파랑일 뿐이며 바다 밑 심연은 늘 고요하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 일상은 파랑의 반복이고, 삶 전체는 심연이다. 파랑은 심연과 한 몸이지만, 드러나는 모습 즉 파랑이 바다는 아니다. 길을 걸으며 걷자님과 아리님은 한글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다. 반야심경의 내용 중 색즉시공이며 공즉시색이라는 경구가 나온다. 파랑은 색이고 파랑이 가라앉으면 공이 된다. 그리고 파랑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심연과 만난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다. 길을 걸으며 길동무의 고락은 우리의 고락이 된다. ‘너와 나’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나’ 즉 만법귀일이 된다.      

길을 마친 후 뒤풀이를 하며 입으로 다시 걷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향연과 웃음의 파도, 땀을 흘린 후 마시는 시원한 술 한 잔은 하루 피로를 씻어준다. 뒤풀이를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이해하게 된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만나는 것이다. 파랑을 보고 바다를 가늠할 수 없듯이, 한 사람의 단 한 가지 언행을 보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또한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조언과 충고를 하는 것 역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할 때 집중해서 경청하는 것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과연 나는 그렇게 했나?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이 글을 쓰며 떠오른다. 앞으로 구업(口業)을 좀 더 조심해야겠다. 또한 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외부나 타인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비추는 아주 귀한 연습을 할 수 있다. 즉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과 상황은 회광반조(廻光返照)를 연습하는 좋은 수행의 장(場)이 된다. 길은 수행이다.      


이번 여정을 하며 앞으로 남은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당분간은 무박 2일로 한 코스 또는 한 코스 반 정도를 걸을 계획이다. 10월쯤이 되면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때는 4박 5일 정도 이어 걷기를 하는 것도 생각 중이다. 하루 걷는 것과 며칠을 이어 걷는 것과는 걷기 맛의 차이가 있다. 다양한 걷기의 맛을 느끼는 것도 걷는 재미의 중 하나다. 무박 2일에서 기대되는 것 중 하나는 새벽에 헤드랜턴으로 자신의 발밑을 비추는 조고각하(照顧脚下)를 하며 침묵 걷기를 하는 걷기 명상시간이다. 새벽 걷기 명상을 하며 아침 해를 맞이하는 멋진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걸으며 해파랑길을 완보할 계획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걷기의 맛도 느끼고 동시에 걷기 학교에서 추구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음 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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