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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Jul 06. 2024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7회 차 후기>

완벽한 하루 

참석 예정되었던 두 분이 건강 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 빨리 쾌유되어 길에서 반갑고 건강하게 만나길 기원한다. 새로운 두 분이 참석하셔서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고맙고 좋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매 번 함께 걸을 수는 없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끔은 금요일에 업무가 있어서 토요일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각자 상황에 맞춰 나와서 걸으면 된다. 동호회의 자유로움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출입의 제한이 없다는 편안함, 참석 여부에 대한 강제성이 없다는 점, 언제 만나도 마치 늘 만나던 느낌이 드는 반가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하며 같은 취미를 즐기는 기쁨,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여유로움이 있다. 물론 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기쁨과 길벗과의 즐거운 대화도 빠질 수 없는 걷기 동호회의 존재 이유다.      


걷기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슴에 벅차오름을 느낀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굳이 벅차오를 만한 특별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왜 그럴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저 즐겁고 기쁘고 행복했다. 늘 걸었던 서울 둘레길을 걸었다. 늘 만나던 길동무들과 새로운 길동무들을 만나 함께 걸었을 뿐이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데도 마음속에는 기쁨이 벅차오른다. 나의 주변에 갑자기 좋은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딱히 그런 것도 없다. 늘 그렇듯 특별한 일이 없는 일상이다. 나의 마음에 큰 변화가 있나?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 나는 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짜증 내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과 느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길벗과 함께 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그냥 기쁨은 기쁨이다. 그리고 이 기쁨을 다시 느끼려 하지 말자. 오늘의 기쁨은 그 기쁨 자체로 충분하고 완벽하다. 그 순간의 기쁨은 그 순간으로 이미 족하다. 더 이상 추구하거나 같은 기쁨을 느끼려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다.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은 그 순간 밖에 없다. 기쁨도 그렇고 슬픔도 그렇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흘러간 물이다. 그러니 기쁨도 슬픔도 맘껏 즐기고 누리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완벽, 반드시, 절대로, 이런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이를 추구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파랑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며 파랑새는 늘 내 옆에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완벽, 반드시, 절대라는 단어는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 완벽한 미인, 완벽한 상황, 완벽한 성공, 완벽한 행복이 과연 존재할까? 사람마다 기준과 가치관이 다르니 성공과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기준이 다르니 나의 완벽한 성공과 행복 역시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리석게 완벽함을 추구하며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금-여기에서 살지 못하고 꿈속 세상을 헤매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꿈을 실재로 알며 혼란과 혼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꿈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얘기를 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이 최고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볼 수 있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음악을 듣고 사람 목소리를 듣는 것이 소원이다. 입맛을 잃은 사람들은 김치의 맛을 느끼고 싶어 할 것이다.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다리와 발로 걷고 뛰는 것이 가장 부러울 것이다. 우리의 의지로 밖으로 나올 수 있고, 우리의 발과 다리로 서울 둘레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행복인가? 게다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서로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고,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고, 간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미각을 갖고 있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얼마나 크고 멋진 기적인가? 이런 기적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고, 나 스스로도 기적을 행하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니 가슴이 벅찬 이유를 알게 된다.      


완벽한 하루가 과연 존재할까? 존재한다. 나날이 완벽한 하루다. 슬픈 날도 완벽하고 기쁜 날도 완벽하다. 산길을 걷는 날도 완벽하고, 집안에 머무는 날도 완벽하다. 다만 자신이 만든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완벽한 날은 있을 수 없다. 관념과 욕망과 생각이 만들어 낸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취할 것을 성취한 후 느끼는 완벽함과 기쁨은 잠시에 불과하고 또 다른 파랑새를 쫓기 때문이다. 늘 욕망을 추구하고 지금-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완벽한 하루를 느낄 수 없다. 생각과 욕망이 만들어 낸 파랑새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 뿐이다. 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는 순간 자연과 호흡하고 매 걸음마다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기쁨으로 걷는다면 파랑새는 매 순간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길벗 한 명은 살면서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채웠다고 한다. 버린 것은 욕망이고, 채운 것은 그 욕망을 모두 이루지 않아도 된다는, 즉 ‘그래도 괜찮아’로 채웠다고 한다. 통쾌하고 멋진 말이다. 다른 길벗은 뭔가를 얻기 위해 걷기 모임에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뭔가가 채워진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얻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으니 매 순간을 즐기고 느낄 수 있어서 저절로 충만감을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과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면 실재(reality)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욕망이 만든 허상에 속아 살아가지 않고, 실재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길을 걸으며 발의 감각에 집중하는 매 순간이 바로 실재를 만나는 순간이다.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이 바로 실재를 만나는 순간이다. 호흡하며 자연의 냄새를 맡는 순간이 바로 실재의 순간이다. 우리는 순간밖에 살 수 없다. 한 호흡 들이마시고 내쉬지 못하면 죽는다. 한 호흡 안에 우리의 생사가 달려있다. 따라서 걸으며 매 순간 발걸음에 집중하고 소리와 냄새에 집중하고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순간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고, 완벽한 순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순간이 하루가 되고, 평생이 된다. 어제 함께 걸은 모든 길동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완벽한 하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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