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반 고흐 미술관을 다녀온 후 저녁엔 그저 푹 쉬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날에도 바삐 움직여야 되니까 체력을 아껴두기로 했다.
일찍 자다 보니 당연히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창밖을 보니 겨울이라 그런지 아직 어스름했다. 오전 7시. 실질적으로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라 서둘러 준비했다.
조식을 먹고 나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서 헤이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암스테르담에서 헤이그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헤이그로 가는 동안 뭔가 마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좀 더 진지해지고 경건해졌다고 해야 하나.
헤이그에 도착하자마자 거센 바람부터 반겨줬다. 바람이 꽤 매서웠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나도 체격이 꽤 있는 편이지만 약간(?) 밀리는 정도였다. 1월의 헤이그는 몹시 추웠다.
추운 날씨 관계로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였다.
내가 헤이그를 가려했던 건 오로지 이준 열사 하나였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역사를 좋아했다. 특별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좋아했다. 현재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역사이자 더욱 생생하기에 다른 시대 역사보다 관심이 많았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다가 느낀 건 다른 시대의 역사와 달리 더 감정이입이 잘되었고 아직까지도 몇몇 이슈들은 현재 진행형이라 우리 일상과 밀접해있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1900년대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손에 빼앗겼을 때의 원통함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선조들의 희생을 공부하면서 느꼈다. 그중에서도 헤이그 특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교과서에도 헤이그 특사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긴 했지만 헤이그라는 도시가 어느 나라의 도시인지 알아보았고 네덜란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직접 그 역사의 생생한 현장에 가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헤이그 중앙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제일 먼저 반겨준 건 낯선 곳에서도 열심히 펄럭이는 태극기였다. 태극기를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태극기를 보는 경우가 흔치 않기에 더욱더 감격스러웠다.
문 앞에서 벨을 누른 후 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오니 이곳을 담담하고 계시는 어르신께서 맞이해주셨다.
관람안내를 해주신 후에 본격적인 관람 시작.
전날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최대한 꼼꼼하게 전시된 것들을 봤다. 헤이그 특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견 배경과 도착, 이동경로, 활동, 신문, 사진, 여러 서류들이 있었다.
분명히 제2차 만국평화회의 초청국 명단에 Corée라 쓰여 있는데 일본과 다른 열강들에 의해 회의장을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게 참으로 슬펐다.
나라를 빼앗기게 생길 판에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는 그 현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아무도 내 얘기를 듣지 않으려 한 사실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현재 이준 열사 기념관은 과거엔 호텔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준 열사께서 순국을 하셨다고 했다. 순국을 하신 곳을 직접 와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또한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비통하셨으면 순국을 하셨을까
잠시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묵념을 했다.
사실 기념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넉넉하게 관람을 했고 최대한 오래 머무르려고 했다. 한 번을 둘러본 것도 모자라 한 번 더 둘러봤다. 3층에도 관람할 게 있었지만 2층이 더 자료가 많았다.
어느 정도 충분히 관람을 마치고 나서 기념관을 나오기 전 방명록을 썼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곳, 헤이그 그리고 헤이그 특사를
이준 열사 기념관을 나오면서 지금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함을 느꼈던 또 한 번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는 수만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떠나는 여행, 바쁜 일상을 떠나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리고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 등등 여러 형태의 여행이 있지만 때론 이렇게 해외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도시를 방문하는 건 어떨까?
어쩌면 이런 여행이 조금은 내 삶을 다채로워지게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보았다.
1월 9일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