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마흔두 살 재택근무자의 고군분투기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이 대표가 아니에요? 그럼 대표하고 직접 통화해야겠네요. 연결해주세요.
전화기 너머로 앳된 목소리의 그녀는 몇 살일까? 갓 대학교를 졸업한 것 같기도 하고, 휴학생 같기도 하고 사회 초년생 같기도 하다. 분명히 존댓말을 쓰는데 싸대기를 분당 오십 번을 맞은 기분이다. 십 여분쯤 지났을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이다.
티링. 경쾌한 종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어서 오세요.
재택근무자는 단골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금 시간 오후 7시.
아들은 태권도에 갔고 7시 30분에 화상영어 수업이 있다. 30분이 뜬다. 노은역 광장 앞에 파란불이 켜진다. 사람들 틈에 껴서 길을 건넌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지음에 갈 거야. 오늘은 수고했으니까 나에게 아포가토를 먹일 거야. 갑자기 마스크 안의 입술로 짭조름한 눈물이 고인다. 눈물과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짠의 조합이다.
마스크 때문에 혹시 못 알아보실까 봐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다행히 사장님이 알아본다. 2주 만에 원두를 사러 왔다. 퇴근이라고 해봤자 카카오 워크 단톡방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만나요!라고 쓰고 로그아웃을 누르는 게 전부다. 느낌표 한 개가 중요하다. 느낌표가 없으면 무뚝뚝해 보이고 두 개면 오버지.
이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재택근무자는 가을을 타는 건지 가을에 눌린 건지 매일이 눈물바람이다. 모니터를 보고 한 번 울음이 터지면 멈출 수 없다. 평생 참아왔던 눈물이 이때다 싶어 흐르나 보다. 이런 상태가 열흘 이상 지속되자 눈물을 닦아가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여유라는 게 있어야 자리에서 일어나 울지. 3개월 된 재택근무자는 책상에서 일어나서 울 수 있는 짬바가 아니다.
2년간 잘 다니던 학원 일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게 작년 11월. 대기업 커피숍 바리스타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내년에 마흔두 살이라 떨어졌나 보네. 씁쓸했다. 지점장까지 하고 싶어요. 호기롭게 얘기했던 입을 달려가서 막아버리고 싶다. 세상은 나이 많은 사람을 경험치가 많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저 부담스러워하지.
어떻게 해서 얻은 직장인데 견뎌내야지. 마스크 안에서 억지로 웃음을 장전한다.
티링. 경쾌한 종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어서 오세요.
재택근무자는 단골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장님 저 오늘 연차 쓰고 치과 다녀왔어요. 진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는데, 집에 너무 가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마취 안 풀렸는데 그냥 왔어요. 저 잘했죠.
마스크 안에서 수다가 쉴 새 없이 나온다. 재택근무자는 9시부터 5시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오롯이 열 손가락만 깨어있을 뿐이다. 하루에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토해내고 재택근무자는 그 토사물을 받아 들고 운다. 싱크대에 버리고 와. 그게 되면 이렇게 울고 있을 리 없다.
찰칵. 사장님이 케멕스에 내려주신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원두가 담긴 빠알간 머그잔과 망고잼 치즈 샌드위치를 찍는다.
마취 한 입으로 커피 마시면 웃기게 안 웃기게.
지음 사장님 표 샌드위치 맛있음. 홍루이젠 건강 버전.
4단지 거기?
치과 갔다 와서 커피 마시는 거야?
어 사장님이 너무 뜨겁지 말라고 얼음도 주심.
마취하고서 양치하면 물이 분수대처럼 나오는 거 넘 웃김.
킬킬거리면서 친오빠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뺨을 스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 지나간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