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9시 55분. 왼쪽 굳은 어깨는 어디까지 풀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뻐근하다. 다리를 쭉 펴고 푸시 스루 바를 잡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 건 아직 무리다.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건 강사님이 벌써 와 있다는 것. 그분의 무릎을 지지대 삼아 끙끙대며 일어나 본다.
롯데슈퍼 진열대에서 오이 3개가 4,990원임을 확인하고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집어 올린다. 아까 한살림에서 3개에 2,800원일 때 살 걸 하는 후회가 잠시 지나간다. 오이 한 개에 천 원을 넘은 지 오래다. 이렇게 물가가 비싸니, 고용주가 월세만 내준다면 캐나다에 가야지라고 생각한다. 오이 가격에 따라 캐나다 비행기를 탔다가 내렸다 한다. 그렇게 두 어달이 지났더랬지.
캐나다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이 이번 주 수요일에 도착했다. 발급된 날짜는 6월 7일. 내 손에 오기까지 3개월이 넘게 걸렸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2019년 가을부터니까 3년이다. 학점은행 수료하고서 바로 신청했으면 2년 전에 받았을 텐데, 코로나랑 같이 딜레이 됐다.
그래서 갈 거야?
캐나다 병이라고 하지. 꺼떡 하면 캐나다 갈 거야. 이거 별로네. 캐나다 가면 되지 뭐. 현실을 쳐다보기 싫을 때, 현실의 벽을 기어오를 자신이 없을 때, 캐나다 캐나다 노래를 불렀다.
현재 캐나다 오이 값은 하나에 5천 원이다(빅토리아 아일랜드 마트 기준). 오이 값이 캐나다 병의 치료제였다. 오이 덕분에 애국자가 됐다.
1. 신속한 병원 치료. 실비보험 90% 커버.
2. 미친 교육열 안에서 다른 대체 방법들이 다양함.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3.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 보기, 관리비, 인터넷, 핸드폰 비용.
4. 누릴 수 있는 사계절.
5. 현재 일하는 일이 어렵지만 좋아.
두 달을 진행했던 교재 콘텐츠 10개를 마무리했다. 금요일에는 새벽 2시까지 작업하다가 토요일 오후에 두 어시 간 더 집중해서 끝냈다. 잔업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이걸 끝냈네. 분명히 수정할게 산더미겠지만 이걸 끝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거지. 원래 이렇게 끝까지 해내는 아이였던 거야?
지난주에는 일을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압도당했다면, 이번 주는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를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시스템 때문인지, 개인의 능력 때문인지를 따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땅만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드론을 타고 위로 올라와서 쳐다보는 기분이다. 다음 주에는 더 높이, 더 넓게 볼 수 있겠지.